우미인(虞美人)

- 내 사랑 개혜에게 -

堆來枕上愁何狀(퇴래침상수하상)

베갯머리에 밀려오는 시름 어이할까

江海翻波浪(강해번파랑)

강해(江海)의 파도처럼 이리도 걷잡을 수 없나.

夜長天色總難明(야장천색총난명)

밤은 깊고 날은 밝기 어려워

寂寞披衣起坐數寒星(적막피의기좌수한성)

어쩔 수 없이 옷 입고 일어나 추위 속에 앉았네

曉來百念都灰燼(효래백념도회진)

새벽이 와서 온갖 시름 사라졌으나

剩有離人影(잉유이인영)

지친 몸 의지할 데 없어

一鉤殘月向西流(일구잔월향서류)

이윽고 반달마저 서산으로 넘어가는 이즈음이면

對此不拋眼淚也無由。

그를 마주하니 눈물 뿌리지 않을 수 없다오．

모택동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그의 사후 20년 후에 장강 탐사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드리운 그의 자취를 보면서 갖게 되는 느낌이었다．그의 고향인 소산(韶山)을 비롯해 장사(長沙)·여산(廬山)·무한(武漢)·남경(南京) 등 그 어디를 가도 모의 시비와 함께 그의 그림자가 밟혔다． 죽음 뒷자락에 모를 살린 것은 그의 혁명과 정치적 경륜이 아니라 인간의 가슴을 적시는 진솔한 시인의 감수성이었다．

『모주석은 뛰어난 시인이었지요．그 분의 시사는 중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모택동의 소산(韶山) 고향집을 찾아가는 길에 중국학자로 탐사에 참가한 호남사범대학 채진초 교수가 한 말이다．그는 이어 『현대시인 가운데 누구도 감히 넘을 수 없는 높은 봉우리를 이룬 본격시인』이라고 덧붙였다．

모택동이 태어나고 자란 생가는 호남성 소산시 서쪽교외의 인봉산자락에 있다．생가는 요(凹)자형 기와집으로 북향이다．건물 전체의 방수는 13개에 이른다．이는 모택동이 스스로 고백한 것과는 달리 그의 집안이 중농이상의 꽤 살만 한 축에 속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모가 고향을 아주 떠난 것은 34세되던 1927년의 일이다．그후 혁명전선을 떠돌다 마침내 중국인민공화국을 건국하고 10년의 세월을 보낸 뒤 1959년 6월，그의 나이 66세의 노인이 되어 고향땅을 다시 밟았다．그 날 그가 부모의 묘소와 사당을 둘러보고 잠을 이루지 못하며 쓴 시가 『소산에 도착해서(到韶山）』이다．

別夢依稀咒逝川(별몽의희주서천)

떠날 때의 일 꿈같이 아득하니 지난 세월 저주스럽다.

故園三十二年前(고원삼십이년전)

32년 전 고향의 원림에서

紅旗卷起農奴戟(홍기권기농노극)

붉은 깃발 날리며 농민들 창 비껴들었고

黑手高懸霸主鞭(흑수고현패주편)

검은 손의 반동들은 채찍 높이 들었다.

爲有犧牲多壯志(위유희생다장지)

장한 뜻 가진 많은 동지들 목숨 희생하며

敢教日月換新天(감교일월환신천)

감히 해와 달에게 새로운 하늘로 바꾸라고 했다.

喜看稻菽千重浪(희간도숙천중랑)

바다같이 물결치는 벼와 콩잎들 즐거이 바라보니

遍地英雄下夕煙(편지영웅하석연)

온 대지에 농민영웅들 저녁 안개 속에 비친다.

58년 시작된 이른바 「대약진 운동」에 대한 당내외의 거센 반발에 부닥친 모주석이 고향에 돌아와 혁명초기와 당시 정황을 그리며 읊은 노래다. 또 한번 혁명의 의지를 다진 셈일까? 탐사단은 모택동의 인간적 면모를 살펴보기 위해 그의 두 번째 부인 양개혜의 옛집을 찾았다．악양(岳陽)에서 장사로 가는 길목에 있는 판창촌(板倉村)이 그곳이다．지금은 「혁명열사」 양개혜를 기념해 개혜진(開惠鎭)이라고 부른다．양개혜는 호남제일사범 시절 이래 모가 가장 존경해 마지않던 스승 양창제의 딸이다. 1020년 양창제가 급환으로 사망한 뒤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자주 그의 집을 드나들다 당시 중학생인 양개혜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당시 모의 나이 27세，양개혜는 19세였다．양의 고거에는 모가 연애시절 보냈다는 서두의 시 「우미인(虞美人)」이 액자에 담겨 있다．

그해 겨울 두 사람은 결혼했으나 행복한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1927년 국공합작 결렬 후 모는 부인 양개혜와 ３명의 자식을 판창(板倉)에 있는 양의 집으로 돌려보내고 강서성의 정강산(井岡山)으로 들어갔다．1930년 10월 양개혜는 국민당정부가 내린 제１차공산당소탕령의 와중에서 경찰에 끌려갔다가 한 달여 만에 처형되고 말았다．양의 고향집 왼쪽 언덕배기에 열사릉으로 단장된 묘소 뒤편으로 병풍처럼 곡장이 둘러쳐져 있다．여기에 『접련화(蝶戀花)―이숙일(李叔一)에게 답함』이란 모택동의 유명한 시가 음각돼 있다．

접련화(蝶戀花)⋅답이숙일(答李叔一)

我失驕楊君失柳(아실교양군실류)

나는 젊은 아내 양을 잃었고 그대는 남편 유를 잃었으나

楊柳輕颺直上重霄九(양류경양직상중소구)

두 버드나무는 꽃솜되어 가볍게 하늘 높은 곳에 올랐네

問訊吳剛何所有(문신오강하소유)

신선되어 하늘에 올랐다는 오강에게

吳剛捧出桂花酒(오강봉출계화주)

가진 것 무엇이냐 물으니 오강은 신선이 마신다는 계화주를 내네

寂寞嫦娥舒廣袖(적막상아서광수)

가련한 상아는 넓은 소매 펄럭이며

萬里長空且爲忠魂舞(만리장공차위충혼ㅁ부)

만리창공에서 두 충성스런 영혼 위해 춤을 추네

忽報人間曾伏虎(홀보인간증복호)

문득 인간세상에서 호랑이같이 사납던 반동파가

淚飛頓作傾盆雨(루비돈작경분우)

항복했다는 소식 듣고 흘리는 기쁨의 눈물 큰비되어 쏟아지는 듯하오!

이숙일은 모의 아내 양개혜의 처녀적 친구다．시 속의 유는 이숙일의 남편 유직순(柳直荀)이다. 그는 1932년 상악(湘鄂)소비에트 서구지역의 홍이군단(紅二軍團) 정치부 주임을 맡고 있었던 유직순(柳直荀)은 일련의 숙당과정에서 반당분자로 몰려 중앙당에서 파견된 중앙분국서기(中央分局書記) 하희(夏曦)에게 호북성의 한 감옥에서 살해되었다.

세상에 모택동의 시가 처음 알려진 것은 57년 １월 장극가란 시인이 창간한 시지 『시간』에 그의 시 18편이 실리면서부터다．『접련화…』는 당시 장사시내의 모중학교 국어교사로 있던 이숙일이 『시간』에 실린 모의 시를 보고 옛날을 추억하는 글을 보내자 모가 그에게 화답해 보낸 것이다．

이 시는 발표되자마자 혼란에 빠져있던 중국문예창작 방법론에 출구를 제공한 전범(典範)과도 같은 작품으로 평가됐다．당시는 백화제방(百花齊放)·백가쟁명(百家爭鳴)의 이른바 쌍백방침(雙百方針)이 철회되고 반우파투쟁이라는 숙청의 열풍이 휘몰아치면서 정부가 내놓은 새로운 문예창작 방법의 진의를 놓고 문예계가 갈팡질팡하던 무렵이었다．모택동은 58년 3월，『중국시는 형식은 민가，내용은 현실주의와 낭만주의의 대립적 통일에서 출로를 찾아야 한다』고 살을 붙였다．문단의 인사들은 그 의미를 몰라 어리둥절할 때 문단의 원로격인 곽말약이 소매를 걷고 나섰다．곽은 「혁명적 현실주의와 혁명적 낭만주의의 상호결합」이란 글을 통해 이를 가장 훌륭하게 체현한 작품이 『접련화…』와 같은 시편들이라고 치켜세웠다．

현재 전해지는 모택동의 시사는 총 73수에 이른다．오늘날 중국 명승고적지 어디에서나 그의 시비를 만날 수 있다．주목되는 것은 이 시비들이 모 사망 후 등소평시대에 들어와 건립됐다는 사실이다．

지난 81년 6월，중국공산당 제11기６중전회에서 「역사결의」가 채택된 뒤로 모택동은 혁명가·정치가로서 역사의 책갈피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그러나 모택동은 이제 혁명과 인간 의 원초적 정서들을 절실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뛰어난 시인으로 중국인들의 가슴속에서 되살아나고 있음을 이번 탐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김시준 서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