詠貧士(영빈사)

서기 420년은 도연명의 나이 56세 되는 해로 동진(東晉) 공제(恭帝) 원희(元熙) 2년, 송무제(宋武帝) 유유(劉裕) 원년이다. 이 해에 지은 《영빈사(詠貧士)》는 모두 7수로 된 연작시다. 제1수의 “아침노을이 밤안개 걷어내니, 뭇새들이 서로 어울려 난다.”라는 포현은 왕조가 바뀌자 지조를 버리고 새왕조에 붙은 무리들의 변절을 암시한 구절로 봐서 동진에서 송으로 교체된 직후에 지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제2수의 “ 싸늘하고 매섭게 해가 저물었는데, 베옷 걸치고 난간 앞에서 햇볕을 쬔다.”라는 표현에서 세모에 지은 시임을 알 수 있다. 일곱 수 모두 현실에서 자신과 같은 절개를 지닌 이를 찾을 수 없어 옛날의 가난한 선비들을 기리며 벗하고자 하는 생각을 읊었다. 도연명은 이런 사람들과 ‘위로 벗[상우(尙友)]’함으로써 외로움을 달래고 또한 자신의 절개를 유지할 수 있었다.



其一
萬族各有托(만족각유탁)
만물은 각기 의탁할 곳이 있는데

孤雲獨無依(고운독무의)
외로운 구름은 돌로 의지할 곳 없어

曖曖空中滅(애애공중멸)
희미하게 공중에서 사라지려고 하니

何時見餘暉(하시견여운)
어느 때 남겨진 빛을 보겠는가?

朝霞開宿霧(조하개숙무)
아침노을 밤안개 걷어내니

眾鳥相與飛(중조상여비)
뭇새들 서로 어울려 난다.

遲遲出林翮(지지출림핵)
느지막이 숲을 나왔던 새는

未夕複來歸(미석복래귀)
저녁도 되기 전에 다시 돌아왔다.

量力守故轍(랑력수고철)
힘을 헤아려 옛길을 지켜가니

豈不寒與饑(기불한여기)
어찌 춥고 배고프지 않겠는가？

知音苟不存(지음구부존)
날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바에야

已矣何所悲(이의하소비)
만사가 그만이라고 하필이면 슬퍼할 필요가 있는가?



其二
淒厲歲雲暮(처려세운모)
싸늘하고 매서운 날 해도 저물었는데

擁褐曝前軒(옹갈포전헌)
베옷 걸치고 난간 앞에서 햇볕을 쬔다.

南圃無遺秀(남포무유수)
남쪽 밭에는 남겨진 이삭도 없고

枯條盈北園(고조영북원)
마른 나뭇가지만 북쪽 정원에 가득하다.

傾壺絕餘瀝(경호절여력(
술병을 기우리니 남은 술 없고

窺灶不見煙(규조불견연)
부엌을 들여다보니 연기가 안 보인다.

詩書塞座外(시서색좌외)
《시경》과 《서경》이 자리 옆을 채웠으나

日昃不遑研(일측불황연)
해가 기울어도 짬을 내서 궁리하지 않는다.

閑居非陳厄(한거비진액)
한가로운 생활이라 진나라에서 당한 곤궁도 아닌데①

竊有慍見言(절유온견언)
가만히 화가 나서 말할 때도 있다.

何以慰吾懷(하이위오회)
무엇으로 내 마음을 달랠 것인가?

賴古多此賢(뇌고다차현)
다행히 옛날에 그런 현자는 많았었지.


(1)진액(陳厄) : 공자가 제자들과 열국을 주유할 때 진나라에서 당한 액운을 말한다. 《논어·위영공(衛靈公)》편에 “진나라에서 양식이 떨어지니[재진절량(在陳絶糧)] 따르던 제자들이 병이 들어 일어나지 못했다. 자로가 화가 나서 공자에게 ‘군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라고 말하자 공자가 ‘군자가 원래 궁하나 소인은 궁하면 넘친다.’라고 대답했다”


其三
榮叟老帶索(영수노대색)
영계기 노인은 늙어서도 새끼를 꼬다가

欣然方彈琴(흔연방탄금)
흔연히 한바탕 거문고를 탔었고

原生納決履(원행납결이)
원헌은 떨어진 신발을 신고 다녔으나

清歌暢商音(청가창상음)
맑은 노래에는 고음이 퍼졌다.

重華去我久(중화거아구)
순임금 시대가 나로부터 멀어지면서

貧士世相尋(빈사세상심)
가난한 선비가 대대로 이어졌고

弊襟不掩肘(폐금불엄주)
헤어진 옷은 팔꿈치를 가리지 못했으며

藜羹常乏斟(여갱상폄짐)
명아주 국은 언제나 건더기가 없었다.

豈忘襲輕裘(기망습경대)
어찌 가벼운 갖옷 입을 줄 모르겠냐만

苟得非所欽(구득비소흠)
구차하게 얻을 바에는 바라지도 않는다.

賜也徒能辨(사야도능변)
자공은 그저 말만 잘했으니

乃不見吾心(내불견오심)
이내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리라!


중국 고대의 가난하게 살면서 안빈낙도(安貧樂道) 했던 영계기와 원헌(原憲)을 빌어 도연명 자신도 가난한 삶 속에서 안정을 얻을 뿐이지 부귀한 생활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표현했다. 영계기(榮啟期)는 빈부의 경계를 초월했고 원헌은 가난해도 맑은 노래를 그치지 않았다. 순임금 이후로 가난한 선비가 끊이지 않았으니 가난해도 구차하지 않기를 이들에게서 본받겠다는 다짐이다. 공자에게 삼락(三樂)을 설파했던 영계기가 부유했던 자공을 깨우쳐 주었던 원헌에 대해 “어찌 가벼운 갖옷 일을 줄을 모르이오만, 구차하게 얻은 것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라고 하여 구차함이 없었던 태도를 기리고 있다. 마지막 구절에서 말한 사(賜)는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으로 언변이 뛰어났는데 여기서는 잔소리하는 부인을 비유했다.


其四
安貧守賤者(안빈수천자)
가난에 편안하고 비천함을 지킨 자로서

自古有黔婁(자고유검루)
옛날 검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①

好爵吾不榮(호작오불영)
높은 벼슬 나는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고

厚饋吾不酬(후궤오불수)
후한 선물을 나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一旦壽命盡(일단수명진)
어느 날 아침 수명이 다하자

弊服仍不周(폐복잉부주)
떨어진 옷은 몸을 다 가리지 못했으니

豈不知其極(기부지기극)
어찌 그의 곤궁함을 알지 못했겠느냐마는

非道故無憂(비도고무우)
도가 아니라서 근심할 것 없었다.

從來將千載(종래장천재)
그 이후로 거의 천년이 지났는데

未複見斯儔(미복견사주)
다시는 이런 사람 보지 못했다.

朝與仁義生(조여인의생)
아침에 인의와 더불어 살았으니

夕死複何求(석사복하구)
저녁에 죽은들 다시 무엇을 구하리.

①검루(黔婁)：전국시대 제나라의 은사다. 제와 노 두 나라의 군주가 관직을 맡아 달라고 초빙했으나 그는 응하지 않았다.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죽을 때 입고 있던 옷은 몸을 다 가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의 부인도 역사 검루와 함께 안빈낙도를 즐겼다.

높은 벼슬과 많은 선물에 마음을 바꾸지 않고 인의의 도를 실천하면서 안빈낙도하다가 죽은 검루를 기렸다. “아침에 인의와 더둘어 살았으니 저녁에 죽은 다시 무엇을 구하리!”라는 말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공자가 한 말이 경지에 이르렀음을 표현했다.





其五
袁安困積雪(원안곤적설)
원안은 쌓인 눈에 갇혔어도①

邈然不可干(막연불가간)
초연한 채 남에게 요구하면 안 된다고 했다.

阮公見錢入(원공견전입)②
원공은 돈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即日棄其官(즉일기기관)
그날로 즉시 자신의 벼슬을 버렸다.

芻槁有常溫(추고유상온)
꼴과 짚에는 항상 온기가 있었고

采莒足朝飡(채거족조손)
토란을 캐어 아침을 대신 떼웠다.

豈不實辛苦(기불실신고)
어찌 진실로 고생스럽지 않으리오만

所懼非饑寒(소구비기한)
두려운 건 배고픔과 추위가 아니었다.

貧富常交戰(빈구상교전)
빈천과 부귀가 항상 서로 싸우나

道勝無戚顏(도승무척안)
도가 이기니 근심하는 안색이 없었다.

至德冠邦閭(지덕관방려)
지극한 덕은 나라와 고을에 으뜸이었고

清節映西關(철정영서관)
청렴한 절개는 서쪽 오랑캐까지 비추었다.


①원안(袁安) : 자는 소공(邵公)이고 후한 여남(汝南) 장양(妝陽) 인이다. 장양은 지금의 하남성 상수현(商水縣) 경내다. 가세가 심히 빈한했다.《여남선현전(汝南先賢傳)》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원안이 낙양에 머물고 있을 때 대설을 만났는데 “낙양령(洛陽令)이 몸소 순시를 나가 살펴보니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눈을 치우면서 걸식을 다녔다. 원안의 집 문 밖에 이르렀으나 눈이 여전히 쌓여 있어 사람의 다닌 행적이 없었다. 원안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낙양령은 사람들을 시켜 눈을 치우고 그의 집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원안이 허기에 지쳐 누워있었다. 어째서 나가서 음식을 구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대설로 기아에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구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낙양령이 원안을 현자라고 여겨 효렴(孝廉)으로 천거했다.
(2)완공(阮公)： 자세한 인적사항은 미상이다. 시의 내용으로 봐서 원래 관리였으나 뇌물을 받는 동료 관리들을 보고 그 날로 관직을 사임했음을 알 수 있다.
(3)추고(芻槁)：꼴과 짚. 가난해서 꼴과 짚을 깔고 자는 것을 말한다.




其六
仲蔚愛窮居(중울애궁거)①
장중울은 곤공한 삶을 즐겼고

繞宅生蒿蓬(요택생호봉)
쑥풀이 나 있는 집에 살았다.

翳然絕交遊(예연절교유)
자취를 감춘 채 세상의 교제 끊었지만

賦詩頗能工(부시파능공)
시부 짓는데 꽤나 뛰어났다.

舉世無知者(거세무지자)
온 세상에 알아주는 이 없었으나

止有一劉龔(지유일유공)②
오직 유공 한 사람만은 그렇지 않았다.

此士胡獨然(차사호독연)
이 선비가 어찌 홀로 그럴 수 있었겠는가？

實由罕所同(실유한소동)
실로 맞는 이가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介焉安其業(개언안기업)
굳건히 자기 일에 편안하였으니

所樂非窮通(소락비궁통)
즐거워한 것은 곤궁이나 영달이 아니었다.

人事固以拙(인사고이졸)
사람과의 관계가 진실로 졸렬하니

聊得長相從(요득장상종)
그저 길이 상종할 수 있었으면 할 뿐이다.




(1)장중울(張仲蔚) : 동한의 평릉(현 섬서성 함양 서북) 출신의 은사다. 글을 잘 이었고 시부에 능했다. 항상 초가집에 살면서 곤궁하고 검소하게 지내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오직 유공(劉龔)만이 그의 사람됨을 알았다.
(2)유공(劉龔)：자는 맹공(孟公)이고 유향(劉向)의 아들인 유흠(劉歆)의 조카다.



其七
昔在黃子廉(석재황자렴)
옛날 황자렴①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彈冠佐名州(탄관좌명주)
벼슬길에 나서서 이름 난 고을 다스렸다.

一朝辭吏歸(일조사이귀)
하루아침에 관직을 그만두고 돌아오니

清貧略難儔(청빈략난주)
청빈으로써는 비할 자가 없었다.

年饑感仁妻(년기감인처)
흉년 들자 어진 아내에게도 느낌이 있어

泣涕向我流(읍체향아류)
나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구나.

丈夫雖有志(장부수유지)
장부 비록 뜻을 가지고 있어도

固爲兒女憂(고위아녀우)
원래 처자식 위해 걱정해야 하는 법.

惠孫一晤歎(혜손일오탄)
혜손이 한번 만나보고 탄식했지만

腆贈竟莫酬(전증경막수)
후한 선물도 끝내 받지 않았다.

誰雲固窮難(수운고궁난)
누가 곤궁에 굳센 절개가 어려다고 했는가?

邈哉此前修(막재차전수)
고상하구나, 선현들이여!



(1)황자렴(黃子廉)：《삼국지·황개전(黃蓋傳)》에 “황개는 남양태수(南陽太守) 황자렴(黃子廉)의 후손이다.”라고 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