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농(勸農)

동진(東晉) 안제(安帝) 원흥(元興) 2년인 403년에 지은 시다. 도연명이 39세가 되는 해다. 구석(九錫)에 오른 환현(桓玄)이 안제를 핍박하여 선양을 요구하자 안제는 황제의 자리를 환현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其一



悠悠上古(유유상고)

아득한 옛날

厥初生民(궐초생민)

그때 처음으로 사람이 생겨났지.

傲然自足(오연자족)

득의하여 스스로 만족하고

抱樸含真(포박함진)

소박하고 진실한 마음을 지녔었지.

智巧既萌(교지기맹)

지혜와 기교가 싹터버리자

資待靡因(자대미인)

필요한 물자는 다해 없어졌다.

誰其贍之(진기첨지)

누가 그것을 넉넉하게 했던가?

實賴哲人(실뢰철인)

바로 훌륭한 분들 덕택이었다.

其二



哲人伊何(철인이하)

훌륭한 분은 누구였던가?

時維後稷(시유후직)

그 분이 바로 후직이셨지.

贍之伊何(첨지이하)

무엇으로 넉넉하게 만들었는가？

實曰播殖(실왈파식)

바로 씨뿌리고 묘목을 심는 일이었지.

舜既躬耕(순기궁경)

순임금은 몸소 밭을 갈았고

禹亦稼穡(우역가장)

우임금 역시 농사지었다.

遠若周典(원약주전)

멀리 《서경·주서》같은 데에도

八政始食(팔정시식)

팔정(八政) 중에도 먹는 것을 제일로 쳤지

※팔정(八政) : 《서경·주서》에 규정한 정부가 해야 할 8가지 분야의 정치

1. 먹거리의 식(食)

2. 재물의 화(貨)

3. 제사를 맡아보는 사(祀)

4. 토지와 주거의 사공(司空)

5. 교육을 관장하는 사도(司徒)

6. 도적을 규찰하는 사구(司寇)

7. 제후를 접대하는 빈(賓)

8. 군사의 일을 맡아하는 사(師)

其三



熙熙令德(희희영덕)

빛나는 훌륭한 덕

猗猗原陸(의의원육)

아아, 아름답고
무성한 들판이여!

卉木繁榮(훼목번영)

꽃과 초목은 번성하고

和風清穆(화풍청목)

부드러운 바람은 맑고 온화했다.

紛紛士女(분분사녀)

분분한 처녀 총각은

趨時競逐(추시경축)

때가 되면 다투어 서로 쫓아다녔다.

桑婦宵興(상부소흥)

뽕잎 따는 여인은 어두워지면 일어났고

農夫野宿(농부야숙)

농부들은 들판에서 잤다.

其四



氣節易過(기절역과)

절기는 쉽게 지나가고

和澤難久(화택난구)

온화한 기온과 적절한 비는 오래가기 어려웠는데

冀缺攜儷(기결휴려)

기결은 아내를 버리고 들에 나갔고

沮溺結耦(저익결우)

장저(長沮)와 걸익(桀溺)은 짝을 지어 밭을 갈았다.

相彼賢達(상피현달)

저 현명하고 도를 통한 사람들도

猶勤隴畝(유근농무)

오히려 논밭에서 힘썼는데

矧茲眾庶(신자중서)

하물며 우리 뭇 백성들이

曳裾拱手(예거홍수)

옷자락을 끌며 팔짱끼고 있을 건가?

※기결(冀缺) :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597년에 죽은 춘초 초 당진(唐晉)의 대부 극결(郤缺)의 다른 이름으로 시호는 성자(成子)다. 그의 부친 극예(郤芮)의 봉지가 기(冀)였음으로 기결이라고 했다. 진문공이 군주의 자리에 서자 반란을 일으킨 극예는 살해되고 가족들은 모두 폐서인되어 극결은 밭을 갈고 부인은
밥을 해서 날랐는데 두 사람은 서로 대하기를 마치 빈객처럼 했다. 그 모습을 본 구계(臼季) 서신(胥臣)이 극결을 천거하자 진문공은 그를 하군대부(下軍大夫)에 봉했다. 진양공(晉襄公) 원년 기원전
627년 원정군 대장이 되어 적족(狄族)을 공격하여 대파하고 적족의 왕을 포로로 잡아왔다. 그 공으로 육경(六卿)으로 발탁된 극결은 부친의 봉지였던 기(冀)에 다시 봉해졌다. 진영공(晉靈公), 진성공(晉成公) 재위시 여러 번 군공을 세워 조돈(趙盾)의 뒤를 이어 당진국의 집정을 역임했다. 진경공(晉景公) 3년 기원전 597년 노환으로 죽자 그의 아들 극헌자(郤獻子) 극(克)이 사위했다.

장저(長沮)와 걸익(桀溺) : 춘추시대의 전설적인 초나라의 은사다.《논어(论语)·미자(微子)》에 “장저(长沮)와 걸익(桀溺)이 짝을 이루어 밭을 갈았다.”라고 했다

공자가 제자들을 이끌고 주유열국할 때 진채(陳蔡) 지간에 식량이 떨어져 7일 동안 고생을 하다가 초나라의 부함(负函)으로 들어가던 도중 강을 건너기 위해 자로를
시켜 밭을 갈던 장저와 걸익에게 길을 묻게 했다. 장저와 걸익은 자로에게 공자를 따라다녀 봐야 고생만
할뿐 이루는 일이 없을 것이니 자기들과 농사를 지으며 살자고 했다. 부함은 지금의 하남성 신양시 평교구(平橋區) 장태관(長台關) 일대로 당시 초소왕(楚昭王)이 먼저 당도하여 공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其五



民生在勤(민생재근)

사람의 생활은 근면에 달려있고

勤則不匱(근즉불궤)

근면하면 배를 골지 않는다.

宴安自逸(연안자일)

편안히 지내며 그냥 놀기만 하면

歲暮奚冀(세모해기)

세모에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儋石不儲(첨석불저)

양식 한두 섬을 쌓아 놓지 않으면

饑寒交至(기한교지)

굶주림과 추위가 번갈아서 몰려오고

顧爾儔列(고이주열)

돌아보건대, 우리
농민들이여

能不懷愧(능불회괴)

부끄러움을 갖지 않으면 되겠는가！

其六



孔耽道德(공탐도덕)

공자는 도덕을 너무 좋아해서

樊須是鄙(번수시비)

번수를 비루하다고 책망했고

董樂琴書(동락금서)

동중서는 거문고와 서책을 즐겨

田園不履(전원불이)

신발에 논밭의 흙을 묻히지 않았다.

若能超然(약능초여냬

만약 사람의 그릇이 크고 뛰어나서

投跡高軌(투적고궤)

높은 경지의 자취를 남길 수 있다면

敢不斂衽(감불염임)

감히 옷깃을 여미고

敬贊德美(경찬덕미)

덕의 아름다움을 경건하게 찬미하지 않으랴?

농사에 힘쓸 것을 자신을 도연명 자신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에게 권유한 시다. 제1장에서 사람들에게 지혜와 기교가
생기면서 사욕을 부림으로써 생활에 필요한 것이 부족하게 되었음을 지적했다. 제2장부터 4장까지는 백성들이 점차적으로 사욕에 물들게 되는 현상을 염려한
고대 성인들이 농사를 중시하여 후직은 파종을 가르쳤고 순임금, 우임금도 제위에 오르기 전에 직접 농사를
지엇음을 언급함으로써 우리 백성들도 농사에 부지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제5장에서는 제목의 의미를 살려 농민들에게 근면의 덕목을 강조하고 농사에 힘쓸 것을 권했다. 이런 권고는 도연명 자신이 직접 농사지으면서 할했기 때문에 더욱 덜득력이 있다. 제6장에서 공자가 번수를 비루하다고 한 것이나 동중서가 전원을 밟지도
않은 것에 대하여 일견 찬양하는 듯하지만, 제2장의 순임금은
몸소 밭을 갈았고 우임금도 또한 농사지었다. 멀리 서경.주서 같은 데에도 “여덟 가지 정책에서 먹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지.”라고 읆은 구절과 연계하여 볼 때 우회적 비판의 뜻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왕정장(王定璋)은 도연명의 이런 태도에 대하여 “선현과 성인들을 숭상했지만 맹종하지는 않았다.공자를 앙모했지만 공자가 노동을 경시한 점이나 농사일을 부끄럽게 여긴 점 등에는 찬동하지 않았다.”라고 평했다. 자신은 공자나 동중서처럼 높은 경지에 자취를 남길 수 없으니
염심히 농사나 짓겠다믄 의도를 언외에 드러내고 있다.

몸소 농사지으며 도를 지켜 나갔던 옛날의 은자들에 대한 찬양과 흠모에서, 도연명이 직접 농사지으면서 느낀 나부심이 드러냈다. 그 전형적인
인물이 ㄴ기결이나 정저, 걸익 등이 전원에서
살아가는 도연명의 추구하는 인물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