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고구수(擬古九首)

陶淵明

서기 421년은 송무제 유유가 동진의 폐제(廢帝) 공제(恭帝)를 시해한 해로 도연명이 57 세 때다. 마지막 9수에 “장강 가에 뽕나무를 심고서 3년이 되면 장차 뜯을 수 있기를 기대했지. 줄기와 가지들이 막 무성해지려고 하는데 홀연 산과 물이 바뀌는 일을 만났다.”라고 한 구절을 보아 418년 공제가 즉위하고 3년 후인 421년에 죽은 해에 지은 연작시로 추정된다. 연작시 의고는 대체로 이익을 쫓아 변절하는 자들의 행태를 풍자하거나 절의를 지켰던 옛 선비들을 칭송하는 등 왕조교체기의 강개가 주를 이룬다.

평소에 교제하던 사람들의 새 왕조에 붙어 충후의 도리를 저버린 행태를 질타했다. 난초처럼 향기롭고 버들처럼 긴밀한 교제를 기대했던 도연명은 “ 난초는 마르고 버들도 시들어, 마침내 이 말을 저버리게”한 친구의 변절에 상심했다. 마지막 연에서 뜻이 통하면 거리에 관계없이 진지한 우정을 유지할 수 있음을 말하여 그렇지 못하고 쉽게 변절하는 경박한 세대를 풍자했다.

其一



榮榮窗下蘭(영영창하란)

창 밑에는 난초가 무성하고

密密堂前柳(밀밀당전유)

집 앞에는 버들이 빽빽하다.

初與君別時(초여군별시)

옛날 그대와 헤어질 때

不謂行當久(불위행당구)

행차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라고 했지.

出門萬裏客(출문만리객)

집을 나서서 만리를 가야하는 나그네가

中道逢嘉友(중도봉가우)

도중에 좋은 친구를 만났는데

未言心相醉)미언심상취)

말도 미처 나누기 전에 마음으로 이미 취한 건

不在接杯酒(부재접배주)

한 잔의 술을 같이 들어서가 아니었다.

蘭枯柳亦衰(란고유역쇠)

난초는 시들고 버들도 말라비틀어져

遂令此言負(수령차언부)

마침내 그때의 말을 저버리게 되었다.

多謝諸少年(다사제소년)

젊은이들에게 간절히 부탁하노니

相知不忠厚(상지불충후)

서로 알아주는 친구들 끼리는 충후해야 하지 않겠는가?

意氣傾人命(의기경인명)

의기는 사람의 목숨도 바치게 하니

離隔複何有(이격복하유)

떨어져있다 해도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其二



辭家夙嚴駕(사가숙엄가)

집 떠나려고 이른 아침에 수레를 손보아

當往至無終(당왕지무종)

장차 무종산에 가려고 했다.

問君今何行(문군금하행)

그대는 ‘지금 어디로 가려나?’하고 묻는데

非商復非戎(비상복비융)

상도 아니고 융도 아니라네

聞有田子泰(문유전자태)

내가 듣기에 전자태라는 사람 있어

節義爲士雄(절의위사웅)

절의는 선비 중에서 으뜸이라고 했다.

斯人久已死(사인구이사)

그 사람 오래 전에 이미 죽었으나

鄉裏習其風(향리습기풍)

마을에는 아직도 그의 유풍이 남아았다.

生有高世名(생유고세명)

살아서는 뛰어난 명성이 있었고

既沒傳無窮(기몰전무궁)

죽어서는 이름이 무궁히 전해진다.

不學狂馳子(불거광치자)

거칠게 내달리는 이들을 본받지 말지니

直在百年中(직재백년중)

다만 인생 백 년 안에 달려 있음을

※전자태 : 후한 말엽, 무종(無終) 출신의 전주(傳注)라는 인물로 자태는 그의 자다.
건안 연간에 유주목 유우(劉虞)의 종사로 있으면서
절의를 다했고 조조를 따라 오환(烏桓)을 정벌한 공으로 의랑(議郞)에 제수되었다.

其三



仲春遘時雨(중춘구시우)

중춘의 제 시간에 비가 오니

始雷發東隅(시뇌발동우)

우레가 동쪽의 모퉁이에서 치기 시작한다.

眾蟄各潛駭(중칩각주해)

뭇 벌레들이 동면하다 놀라고

草木縱橫舒(초목종횡서)

초목은 종횡으로 뻗어나간다.

翩翩新來燕(편편신래연)

훨훨 날아 다시 돌아온 제비

雙雙入我廬(쌍쌍입아려)

쌍쌍이 내 집으로 들어온다.

先巢故尚在(선소고상재)

옛날의 둥지 그대로 남아있어

相將還舊居(상장환구거)

서로 이끌며 옛 살던 곳으로 돌아온다.

自從分別來(자종분별래)

내가 그대들과 헤어져 떠난 이후로

門庭日荒蕪(문정일황무)

문 앞의 뜰은 날마다 거칠어 갔지.

我心固匪石(아심고비석)

내 마음은 본래 구르는 돌이 아니거늘

君情定何如(군정정하여)

그대들의 심정은 진정 어떠한지 모르겠다.

其四



迢迢百尺樓(초초백척루)

높디 높은 백 척의 누대

分明望四荒(분명망사황)

사방을 조망하니 끝까지 보인다.

暮作歸雲宅(모작귀운택)

저녁에는 홀로가는 구름의 집이 되었고

朝爲飛鳥堂(조위비조당)

아침에는 나는 새들의 거처가 되었다.

山河滿目中(산하만목중)

산하는 눈 안에 가득하고

平原獨茫茫(평원독망망)

평원은 특히나 망망하다.

古時功名士(고시공명사)

옛날에 공명을 추구하던 인사들

慷慨爭此場(강개쟁차장)

강개한 마음으로 이 땅에서 다투다가

一旦百歲後(일단백세후)

어느 날 죽은 후 오랜 세월 뒤에

相與還北邙(상여환북망)

함께 북망산으로 돌아갔지.

松柏爲人伐(송백위인벌)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람들 손에 쓰러지고

高墳互低昂(고분와저앙)

높은 무덤들은 서로 아래위로 자리했다.

頹基無遺主(퇴기무유주)

무너진 무덤은 관리할 후손도 없으니

遊魂在何方(유혼재하방)

떠도는 영혼은 어느 곳에 있는가?

榮華誠足貴(영화성족귀)

부귀영화가 진실로 귀하다지만

亦復可憐傷(역복가련상)

역시 가련하고 또한 가슴 아픈 일이다.

其五

東方有一士(동방유일사)

동방에 한 선비가 있었는데

被服常不完(피복상불완)

입은 옷은 항상 온전하지 못했다.

三旬九遇食(삼순구우식)

한 달에 아홉 끼의 식사만으로 살고

十年著一冠(십년저일관)

십 년에 갓 하나를 쓴다.

辛勤無此比(신근무차비)

고생은 비할 수 없이 많은데

常有好容顏(상유호용안)

항상 좋은 얼굴 지니고 산다.

我欲觀其人(아욕관기인)

내가 그 사람을 한 번 보고 싶어

晨去越河關(신거월하관)

새벽에 떠나서 강과 관문을 넘었다.

青松夾路生(청송협로생)

길 양쪽에 자라는 푸른 소나무를 지나

白雲宿簷端(백운숙첨단)

처마 끝에는 흰 구름들이 머무는 집에 당도했다.

知我故來意(지아고래의)

내가 일부러 찾아 온 뜻을 알고

取琴爲我彈(취금위아탄)

거문고 가져와 나를 위해 탄다.

上弦驚別鶴(상현경별학)

앞 가락에서는 별학조로 놀라게 하더니

下弦操孤鸞(하현조고란)

뒷 가락에서는 고란곡을 연주한다.

願留就君住(원유취군주)

바라건대 그대의 거처에 머물면서

從令至歲寒(종금지세한)

지금부터 세한의 계절까지 지냈으면 좋겠다.

※별학 : 원명은 별학조(別鶴操)로 부부의 이별을 노래한 금곡의 제목이다.

※고란(孤鸞) : 짝을 잃어 외로우나 고결한 품성을 지닌 난새를 노래한 금곡의 제목이다.

其六

蒼蒼谷中樹(창창곡중수)

짙푸른 계곡 속의 나무들

冬夏常如茲(동하상여자)

겨울이나 여름이나 한결같다.

年年見霜雪(연년견상설)

해마다 서리와 눈을 만나니

誰謂不知時(수위부지시)

누가 때를 모른다고 하겠는가?

厭聞世上語(염문세상어)

세상 사람들에게서 귀가 아프게 들은 말은

結友到臨淄(결우도임치)

“벗을 사귀려면 임치로 가야한다.

稷下多談士(직하다담사)

직하에는 담론하는 선비들이 많으니

指彼決吾疑(지피결오의)

그들에게 가서 내 의심을 해결하리라?”라고 말했지.

裝束既有日(장속기유일)

길 떠나려고 행장을 꾸린지 여러 날이 지나고

已與家人辭(이여가인사)

집 사람과 작별인사도 이미 했지만

行行停出門(행행정출문)

가려고 집 나설 때마다 멈추고는

還坐更自思(환좌갱자사)

다시 돌아와 앉아서 또 생각한다.

不怨道裏長(불원도이장)

길이 먼 것은 걱정되지 않으나

但畏人我欺(단외인아기)

다만 남들이 나를 속일까 두려울 뿐이다.

萬一不合意(만일불합의)

만일 그들과 뜻이 맞지 않는다면

永爲世笑嗤(영위세소치)

영원히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을 터이다.

伊懷難具道(이회난구도)

가슴에 품고 있는 이 심정 말하기가 어려워

爲君作此詩(이군작차시)

그대에게 이 시를 지어주노라!

其七



日暮天無雲(일모천무운)

날이 저문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는데

春風扇微和(춘풍선미화)

봄바람은 미미한 온기를 불어준다.

佳人美清夜(가인미청야)

아름다운 여인은 맑은 공기의 밤을 좋아하여

達曙酣且歌(달서감차가)

새벽이 이르도록 술마시켜 노래한다.

歌竟長歎息(가경장탄식)

노래를 끝내고 길게 탄식하는데

持此感人多(지차감인다)

이 노래로 사람들을 많은 것을 느끼게 할 수 있겠다.

皎皎雲間月(교교운간월)

“구름 사이의 달은 교교하게 빛나고

灼灼葉中華(작작엽중화)

잎사귀 사이의 꽃은 찬란하게 빛난다.”

豈無一時好(기무일시호)

어찌 한때의 좋은 시절 없었겠는가마는

不久當如何(불구당여하)

오래가지 못하니 장차 어찌 하겠나?

其八

少時壯且厲(소시장차려)

젊었을 때는 굳세고 또한 거칠어

撫劍獨行遊(무검독행유)

칼 차고 혼자서 잘도 돌아다녔다.

誰言行遊近(수언행유근)

나의 여행지가 가깝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나?

張掖至幽州(장액지유주)

서쪽의 장액에서 북쪽의 유주까지 다녀왔는데!

饑食首陽薇(기식수양미)

수양산의 고사리로 허기를 채우기도 했고

渴飲易水流(갈음역수류)

역수의 강물로 기갈을 해소하기도 했지만

不見相知人(불견상지인)

나를 알아줄 사람은 만날 수 없었고

惟見古時丘(유견고시구)

다만 본 것이라고는 옛날 무덤

伯牙與莊周(백아여장주)

백아와 장주의 것이라고 했다.

此士難再得(차사난재득)

이런 선비들은 다시 만날 수 없으니

吾行欲何求(오행욕하구)

내 여행은 무엇을 구하고자 했었음인가?

젊은 시절 큰 뜻을 품고 공업을 이루고자 했으나 혼란한 세상을 만나 백이‧숙제의 절개와 형가의 의협이 더욱 높이 여겨지고 백아와 장자가 그리울 뿐이다. 첫 4구에서는 호탕한 뜻을 지녔던 젊은 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다음 연의 ‘수양산의 고사리’나 ‘역수의 강물’은 백이‧숙제와 형가에 대한 흠모의 상징이다. 현실은 그러한 절의와 의협을 간직한 사람, 즉 자신을 알아줄 사람이 존재하지 않음을 백아와 장주를 예로 들어 암시했다. 종자기(鍾子期)의 인정을 받고 거문고를 연주했던 백아(伯牙)나 혜시(惠施)가 상대를 해주었음으로 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던 장자는 종자기와 혜시가 죽자 지기(知己)를 잃어버렸다. 이 편에서는 절의를 지켰던 옛사람들에 대한 칭송과 지기를 만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실이 교차해 있다.

※백이‧숙제는 지금의 하북성 당산시 동북쪽 노룡현(盧龍縣) 소재했던 동이족 계통의 왕국인 고죽국의 왕자였다. 두 사람은 고죽국의 왕위를 버리고 주문왕을 찾아가 그의 신하가 되었으나 문왕이 죽자 상나라를 정벌하려는 주무왕에게 신하의 나라가 임금의 나라를 공격하는 행위는 천륜에 어긋나는 짓이라고 만류했다. 주무왕이 듣지 않았음으로 두 사람은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굶어죽었다. 백이와 숙제가 들어간 수양산의 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대체로 지금의 산서성 하곡부의 뇌산(雷山)이란 별명의 해발 1900미터의 설화산(雪花山)이란 설이 유력하다. 그밖에 지금의 노령현 경내의 수양산이라는 설이 있다. 도연명은 수양산을 고죽국의 옛 영토였던 노령현 경내의 산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역수는 자객 형가가 진시황을 암살하려는 임무를 띠고 함양으로 출발할 때 전별연을 벌인 곳이다. 도연명이 젊었을 때 유주 일대를 여행하면서 수양산과 역수를 방문했음을 말하고 있다.

※지음(知音) : 백아는 거문고를 잘 탔고 종자기는 듣기를 잘했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서 뜻이 높은 산에 있으면 종자기는 “ 훌륭하도다! 드넓어서 태산과 같구나!”라고 말했고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 훌륭하도다! 드넓어서 강하와 같구나!”라고 했다[고산유수멱지음(高山流水覓知音). 후에 종자기가 병이 들어 일찍 죽자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면서 “나의 음악을 알아주는 사람[지음(知音)]이 죽었으니 나를 누구를 위해 거문고를 탄단 말인가?”라고 했다.

其九



種桑長江邊(종상장강변)

장강 강변에 뽕나무를 심고서

三年望當采(삼년망당채)

삼 년이 되면 장차 뜯을 수 있겠거니 했다.

枝條始欲茂(지조시욕무)

줄기와 가지들이 막 무성해지려는데

忽值山河改(홀치산하개)

갑자기 산과 강이 바뀌는 일을 만났다.

柯葉自摧折(가엽자최절)

나뭇가지와 잎은 자연 꺾였고

根株浮滄海(근부부창해)

뿌리와 그루터기는 큰 바다로 떠내려갔다.

春蠶既無食(춘잠기무식)

봄누에가 이미 먹을 것이 없어졌으니

寒衣欲誰待(한의욕수대)

겨울옷을 누구에게 기대하나?

本不植高原(본부식고원)

본래 높은 언덕에 심지 않고서

今日複何悔(금일복하회)

금일 다시 무엇을 후회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