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시의 특성연구

李賀 詩의 特性硏究

제1장 서론

본고에서는 이하가 귀재(鬼才)라 칭해진데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이하시의 풍격과 표현방식의 특색 및 사상을 뚜렷하게
나타내 주는 시들을 중심으로 이하란 시인의 시의 특색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2장’에서는 이하의 생애를, '3장'에서는 전반적인 이하시풍의 특색을 언급하고, 그 특징을 각각 색채감, 신괴시, 비상감과 염세관, 대용어의 애용과 조어의 독창성이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보기로 한다.

아울러 당대(唐代)의 시인을 연구대상으로 삼은 것에 대한 한계로서 이하, 이하시선(이동향 택주)이라는 번역서를 텍스트로 삼은 것에 대해 본 연구의 한계점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제2장 생애

이하는 서기 790년 당(唐) 종실(宗室)의 후예로 태어났다. 그러나 왕족의 신분과는 이미 동떨어진 채 가난과 질병 속에서 허덕여야만 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의 작품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 〈제귀몽(題歸夢)〉에서「집안 사람들의 두터운 사랑과 기대, 주린 배 채워주기 바라지만, 피곤에 지친 마음 등불만이 잠 못 이룬 눈 비춘다.」(家門厚重意, 望我飽飢腹, 勞勞一寸心, 燈花照魚目)라 했고, 〈송침아지가서(送沈亞之歌序)〉에서 「그를 달랠 술 살 돈마저 없구나」(無錢酒以勞), 〈개추가(開秋歌)〉에서는 「술집 앞에서 말 멈춰 가을 옷 벗어들고 의양(宜陽)의 좋은 술 한병과 바꾸기를 청한다.」(旗亭下馬解秋衣, 請貰宜陽一壺酒)라 함으로서 그가 처한 곤궁한 형편을 여실히 드러내놓고 있다. 이와 같은 빈곤(貧困)에 덧붙여 그의 건강마저도 예사롭지 않아
작품 곳곳에서 병마에 시달리는 고달픔을 토로하고 있다.

이하는 20세에 들어서면서 이미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숭의리체우(崇義里滯雨)〉에서「꿈속에서조차 흰머리 돋아남을 통곡했네」(夢泣生白頭), 〈출성기권거양경지(出城寄權璩楊敬之)〉에서는, 「한검(漢劍) 같이 날을 때가 있다고 호언했건만 어이해 병든 몸을 귀향의 수레에 싣고 가는가」(自言漢劍當飛去, 何事還車載病身), 〈시제(示弟)〉에서는 「병든 몸 아직 살아 있으니 세상에
무슨 일인들 없으랴」(病骨猶能在, 人間底事無)라 했다.

이와 같이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빈곤에 찌들린
생활에서 터져나오는 울분과 젊은 나이에 질병에 시달리며 항상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결코 원만하거나 낙관적인 것이 될
수가 없었다. 생활주변의 이러한 무기력하며 암울한 색채는 그의 뛰어난 천재성 때문에 가일충 심화
되고 있다. 「신당서(新唐書)」에서 이하가 일곱 살 때 한유(韓愈)와 황보식(皇甫湜) 앞에서 〈고헌과(高軒過)〉라는 시를 지음으로 세인을 놀라게 했다고 전하고 있다.물론 이 사실은 여러 고증을 거쳐 신빙성을 잃고 있지만 우리는 이것을 통해 최소한 이하가 어려서부터 문명을 떨쳤다는 점을 추론해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당대(當代) 문단의 최고봉이던 한유(韓愈)를 여러차례 경탄케 한 것으로 미루어 그의 천재성을 부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그의 이른 문명과 천재가 갖기 쉬운
오만한 성격 탓으로 그를 시기하는 무리들로부터 일생일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는데 바로 ‘가휘(家諱)’의 사건이다. 부친의 이름이 진숙(晋肅)이기 때문에 진사과에 응시하려는 이하는
진사과의 진과 진숙의 진의 음이 동일한 고로 시험에 응시하는 것은 ‘가휘(家諱)’를 범하는 것이라 하여 결국 한유(韓愈)의 변호에도 불구하고 이하는 과거에 응시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현실의 질곡과 부조리로 기인하는 좌절과 울분은 문학에의 열정으로 대치된다. 대취(大醉)하거나 조상(弔喪)을 만나는 날을 빼고는 매일같이 시작을 위한 길을 떠났다. 따라서 그는 문학을 통해서 현실에서 얻지 못하는 여러 욕구를 보상받으려 했다.

상기와 같이 이하는 왕족의 신분으로 가난과
병고를 감수해야 했고 그의 뛰어난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오직 문학에 의존해서 자기 자신의 내부의 의식을 표출해 냈다.

제3장 시풍의 특성

일반적으로 ‘이백을 선재, 이하를 귀재’라고 평한다. 이백의 시가 ‘준마(駿馬)가 사극(四極)을 달리고 신선이 구름 위를 노니는 듯 자유분방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하늘에서 내려오는 노랫소리’임에 반하여, 이하의 시는 ‘무덤 속 깊은 곳으로 울려 나오는 축축하고
음울한 노랫소리 같다.’ 귀재란 귀신과 같은 뛰어난 재주를 뜻하는 말인데 이하의 경우 이러한 뜻 외에 다른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귀(鬼)는 귀신, 사자, 망령을 의미한다. 따라서 귀재란 즉 인간계의 시인이 아니라 귀계의 시인이란 말이다. 이하는 유령이나 요괴, 귀신 등 초자연적 사물을 많이 노래하여 귀기가 서린 듯 기괴하고 음침한 분위기를 잘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하시의 특색이자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귀(鬼)를 중심으로 한 환상적인 시들이다.

따라서 이하의 시풍을 요약하자면 소재적인
측면에서 귀신과 유령의 세계 비관적 염세적인 색채를 띄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시 세계는 다른 시인들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징이있다.

1. 시어의 특징

① 색채감(色彩感)

이하시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색채감각을
이용한 점이다. 그는 시각적 효과를 위하여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색채자를 운용하고 있는데 이는 「백가지
비단을 펼쳐놓은 듯 오색이 현란하여 눈이 부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자세히 볼 수 없도록」함으로써 화려하고 휘황한 색깔의 향연 속에 그 자신만이 느끼는
울분과 실의를 감추고자 하였다. 단지 주목할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하가 따뜻하거나 밝고, 정감 어리는 색채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처량하고도 쓸쓸하며 고독한 이미지의 색채를
사용하고 있고 붉음(赤)과 푸르름(靑)과 같은 색채를 즐겨 쓰기도 했지만 특히 백색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계만량(谿晩涼)〉을 보면,

白狐向月號山風 흰여우 달을 향해 짖으니
골바람 일어나고,

秋寒掃雲留碧空 가을추위는 구름 쓸어가 창공만을
남겼어라.

玉煙靑濕白如幢 수풀 속 옥빛 안개 흰 깃발처럼,

銀灣曉轉流天東 은하수 새벽 맞아 하늘 동편에
앉았어라.

스물 여덜자 중 이하는 여섯 개의 색채자를
사용해 운용의 묘(妙)를 이루고 있다. 비록 이처럼 많은 색채자를 사용하였으나 시로부터 생겨나는 색깔의 감성은 화려하거나 현란한 것이 아닌 처량하고 서글픈 종류의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산중에 오직 한 마리 여우가 달빛을 받아 창백한 빛깔로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정경은 마치 전설이나 환상에의 세계처럼 한없이 음산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만다. 〈장평전두가(長平箭頭歌)〉를 보면,

漆恢骨末丹水沙 새까만 옻나무재, 하얀 뼈, 빨간 단사(丹沙) 같이

凄凄古血生銅花 흥건히 흐른 옛 전사자(戰死者)의 피는 쇳조각에 피운꽃.

제목에서 장평(長平)은 진(秦)의 장군 백기(白起)가 조군(趙軍) 40만을 묻어 죽인 싸움터다. 전두(箭頭)란 화살촉이니 그 곳을 가다가 우연히 주웠던
모양이다. 그 쇠붙이를 보면서 이하가 연상해낸 색감은 녹슬은 검은 빛, 흰 빛, 붉은 빛이 어둡게 엉기어 있어서, 아마도 어느 병사가 흘린 피가 아닐까? 하고 생각을 가지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하의 색채감각은 시 전체를 덮고 있어서 검은 빛, 흰 빛, 붉은 빛의 혼합으로 언어의 색은 어둡고도 암담하다. 〈안문태수행(雁門太守行)〉을 보면,

黑雲壓城城欲摧 黑雲은 城을 눌러 성벽은
무너질 듯

甲光向月金鱗開 달빛에 갑옷은 금빛 비늘
번쩍이네

角聲滿天秋色裏 나팔소리 가을 하늘에 가득히
울려 퍼지고

塞上燕脂凝夜紫 성벽위 연지빛 피는 밤에
자색으로 엉긴다

색감을 나타내는 ‘흑운(黑雲), 금린(金鱗), 연지(燕脂), 야자(夜紫)’ 와 같은 시어에서 볼 수 있듯이 이하는 색채어를 형용사로 사용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미의 요소를 색채에서 찾았으며, 색감과 정감의 관계까지도 생각했다는데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서 풀이라든가 꽃이라든가 색채가 있는 사물을 형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나, 색채가 없는 것 까지도 색채로 나타내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자기 내부의 정감을 말하고
있다. 〈남산전중행(南山田中行)〉에서의 ‘추야명(秋野明) 추풍백(秋風白)' (가을들 훤하고, 가을 바람 하얗다.) 가을 바람을 백색으로 형용한 것을 얼른 보기엔 이해하기 힘드나 백색(白色)이 주는 공백감(空白感)과 허탈감(虛脫感)이 이하의 내부심리와 일치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하는 특히 백색에 대해 몹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백색에 대한 중국인의 전통관념은 우리 나라에서의 맑고 순결함과 같은 종류의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슬픔과 상서롭지 못한 감각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백색을 통해 추리해
낼 수 있는 것은 사망과 노쇠의 연상이다. 그러나 이하는 이러한 감상적이면서 처연한 흰색에의 부정적 관념에서 수시로 탈피하여
원시적 분위기가 가득한 관능의 세계로 들어가 자신만의 몽환적 시 세계를 펼쳐나갔다.결국 정신적인 패배와 좌절 그리고 허무감으로 인해서 백색에 집착하였다고 볼 수 있다.

② 대용어(代用語)의 애용(愛用)과 조어(造語)의 독창성(獨創性)

대용어의 사용은 수사적 방법에서는 일종의
은유(비흥:比興)라고 하겠는데 전고(典故)와 함께 많이 이용되고 있어 시의 내용과 의미를 확대(擴大), 심화(深化)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그의 〈칠석(七夕)〉에서 은하수를 “별포(別浦)”, 달은 “분금경(分金鏡)”으로 대용하여 쓰고 있다. 이하 시에서 대용어를 살펴보면 술을 “호박(琥珀)”, 가을꽃을 “냉홍(冷紅)”, 태양을 “홍경(紅鏡)”, 등으로 나타내고 있다. 조어(造語)의 독창성(獨創性)이란 앞사람들이 사용했던 기성(旣成)의 시어(詩語)를 피하여 새로운 말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이다. 자기의 독특한 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기성어(旣成語)의 사용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기한 말을 만들어 사용하는데 서슴지 않았다. 이하 시에 주역을 다는 작업이 여러 제자들에 의하여 행해졌지만, 아직도 어구(語句)의 전거(典據)가 설명되지 않은 것이 많은데 이는 이하 자신이 만들어낸 조어(造語)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2. 시풍의 내용.

① 신괴시(神怪詩)

이하가 신괴시를 쓰게 된 배경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당시의 사회적 관습에 의해서 끝내 좌초되어 죽을 때까지 좌절감과 정신적 패배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이하는 한편으로는 현실적 상황을 인정하고, 한편으로는 그 같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일환으로 초현실세계인 천상(天上)과 귀신세계에 진입하여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자유스러움을 찾고자 하였으며 동시에 자신의 좌절을 보상받고 싶어서 신괴시를 창작하였다. 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하의 시에서는 흔히 ‘귀신(鬼神), 망혼(亡魂), 요괴(妖怪)’가 출현하고 있으며, 음산하고 기괴한 환상이 충만해 있다. 이런 점은 그의 병약(病弱)하고 신경질적인 체질과 병적인 심리상태와 많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는 시(詩)로 대략 〈소소소묘(蘇小小墓)〉, 〈신현곡(神絃曲)〉, 〈신현(神絃)〉, 〈추래(秋來)〉, 〈감풍기삼(感諷其三)〉, 〈장평전두가(長平箭頭歌)〉, 〈공무출문(公無出門)〉등이 있다. 아래 몇 편의 시를 예로 들어서 신괴시를 말하기로 한다. 〈소소소묘(蘇小小墓)〉를 보면,

幽蘭露 그윽한 蘭의 이슬은

如啼眼 눈물어린 그대의 눈

無物結同心 同心 맺어줄 그 어느 것도 없고

煙花不堪剪 자욱한 안개 없앨 수도 없네

草如茵 빽빽한 수풀은 부드러운 요

松如蓋 빽빽한 소나무는 수레의 덮개

風爲裳 바람은 옷이 되어 나부끼며

水爲佩 물은 佩玉이 되어 빛나네

油壁車 푸른 포장마차

夕相待 저녁에 기다리니

冷翠燭 시리고 푸른 인불이

勞光彩 광채를 더할 때

西陵下 西陵의 무덤에는

風吹雨 비바람만 불어오네.

이 시는 이하의 신괴시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정도로 평가 받고 있는데. 그 요인으로는 대략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짧은 음절과 변환(變換)의 운각(韻脚)으로 전편(全篇)에 걸쳐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또한 많은 명사와 최소한의 동사, 짧은 시어와 草, 風, 雨, 水 등과 같은 자연경물(自然景物)로 아름다운 여귀(女鬼)를 창출했으며 전편에 걸쳐 한 글자의 ‘귀(鬼)’ 자(字)도 없는데도 귀기(鬼氣)를 자아낸 점이다. 둘째 “여제안(如啼眼)”, “초여인(草如茵)”, “송여대(松如蓋)”처럼 “여(如)”와 “풍위상(風爲裳)”, “수위패(水爲佩)”와 같이 “위(爲)”자(字)를 사용하여 경(景)으로써 흥(興)을 일으키고 경물(景物)을 통하여 사람의 형상을 환상적(幻想的)으로 표출하는 사경융합(寫景融合)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여 귀백(鬼魄)이 생동하는 분위기를 창출했고 동시에 여귀(女鬼)를 형상화(形象化)하였다.이시를 보면 가히 “세목이장길귀재(世目李長吉鬼才)”라는 평가가 틀리지 않다. 〈남산전중행(南山田中行)〉을 보면,

秋夜明 가을 들판 훤하고

秋風白 가을 바람 하얗다

塘水漻漻蟲嘖嘖 못의 물은 깊고 맑고 풀벌레 찍찍 울며

雲根苔蘇山上石 구름아래 이끼는 산위 돌에
뻗어있네

冷紅泣露嬌啼色 가을 꽃 이슬에 젖으니 여인의
흐느끼는 모습

荒畦九月稻叉牙 화량한 구월 논에 벼이삭은
어지러이 흩어지고

蟄螢低飛隴徑斜 반딧불 낮게 나는 밭두렁
길 비스듬히 나 있네

石脈水流泉滴沙 바위 틈에 물 흘러 샘물은
모래를 적시고

鬼燈如漆點松花 옻나무처럼 빛나는 인불이
소나무를 비추네

이 시는 앞의 시와 달리 고대 민간가요(民間歌謠)의 기구식(起句式)인 ‘3,3,7’의 형식을 빌고, 정련(精練)되고 세밀한 회화수법(繪畵手法)을 사용하여 귀기(鬼氣)서린 가을 정경을 묘사한 작품이다. 특히 시인은 이 시에서 색채감(色彩感)과 뛰어난 형상화(形象化)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앞서 章에서 이 시의 색채감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첫구의 ‘추야명(秋野明), 추풍백(秋風白)’에서 가을 들판과 바람이 ‘명(明)’ 과 ‘백(白)’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본래 가을의 이미지는 만물이 소생하고 생기 발랄한 분위기를 지니는 봄과 달리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우수를 느끼게 해주는 이미지인데. 시인은 오히려 밝고 활기찬 이미지인 ‘백(白)’이라는 색채( 色彩)를 사용하는 반어적인 수법을 사용하여 더욱 황량하고 쓸쓸한 가을을 표출하였다. 또한 시인은 끝구에서 “냉홍읍로교제색(冷紅泣露嬌啼色)”라 하여 이슬에 젖은 가을 꽃을 ‘여인의 모습’으로 묘사해 슬픔에 잠겨 있으면서도 아리따운 여인(女人)의 자태(姿態)를 형상(形象)으로 만들고, 또 “귀등여칠(鬼燈如漆)”으로 귀화(鬼火) 즉 인불을 묘사하는 탁월한 형상화를 사용하여 귀기감(鬼氣感)을 전체적으로 확대시켰다. 그리고 마치 산수화(山水畵)를 보듯이 음산하고 귀기감이 감도는 늦가을의
풍경이 눈앞에 선명히 펼쳐져 시중화(詩中畵)를 연상케 하였다. 〈신현곡(神絃曲)〉을 보면,

西山日沒東山昏 서산에 해지고 동산에 어둠이
드리우면

旋風吹馬馬踏雲 회오리바람에 말 탄 귀신들
구름 밟고 몰려오네

畵絃素管聲淺繁 그림 새겨진 현악기 관악기
풍악 울리며

花裙綷縩步秋塵 무당은 사르르 치마를 끌어 가을 밟아
춤을 춘다.

桂葉刷風桂墜子 계수나무 잎에 바람 일 때
열매 떨어지고

靑狸哭血寒狐死 푸른 살쾡이 핏빛 울음을
토하니 외로운 여우가 죽어가네

古壁彩虯金帖尾 오래된 벽에는 황금 꼬리
달린 용이 새겨져 있어

雨工騎入秋潭水 우신(雨神)은 용을 타고 가을 못 속으로 들어가고

百年老鴞成木魅 백년 묵은 올빼미 고목 귀신(鬼神) 되어

笑聲碧火巢中起 서슬푸른 웃음소리 도깨비불
둥지에 일어나네.

이 작품이 중국 전통시(傳統詩)중 공포괴이(恐怖怪異)를 묘사한 시만을 찾는다면 최상의 작품이라고 한다.

시를 분석해 보면 첫 4구에서는 가을 날 황혼 무렵에 무당이 풍악을 울리고 춤을 추면서 영신(迎神:신을 맞이함)하는 것을 묘사하였다. 특히 족풍(族風:회오리바람)에 귀신이 구름을 밟고 온다는“ 것은 옛날에 ‘족풍(族風)중에 귀신이 오는데, 낮은 바람에는 귀(鬼)가 높은 바람에는 신(神)이 온다’는 관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하는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신(神)이 내리는 모습을 표출했다. 5구에서 8구 까지 에서는 시인의 독창적인 상상 세계가 펼쳐진다. 다시 말해 사나운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고, 푸른 살쾡이가 핏빛 울음을 울고, 외로운 여우가 죽어 가는 등 분위기가 고조되어간다. 그리고 끝 두 구에서 시인은 독자로 하여금 전율(戰慄)을 느끼에 하는 귀화(鬼火:인불)를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웃음소리(笑聲)’ 라는 소리의 효과를 극대화시킴으로서 음산함을 더욱 생생하게 표출했다. 〈감풍(感風)〉을 보면,

南山何其悲 남산은 어찌 이다지도 쓸쓸한가

鬼雨灑空草 귀신이 흐느끼듯 공허한 풀밭에
비는 뿌리고

長安夜半秋 장안의 깊은 가을 밤

風前幾人老 가을 바람에 몇 사람이 늙어
가는가

低迷黃昏徑 어둑어둑한 황혼길

裊裊靑櫟道 흔들거리는 푸른 가죽나무

月午樹立影 달은 중천에 떠 나무 그림자는
사라지고

一山惟白曉 산은 하얀 달빛에 새벽이 밝아
오는데

漆炬迎新人 귀화(鬼火)는 새 사람을 맞이하여

幽壙螢擾擾 깊은 묘혈(墓穴)속에 도깨비 불이 어지럽다.

이 시는 “귀시(鬼詩)이면서 귀경(鬼景)을 나타낸 시(詩)이다.” 시는 구조상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앞 4구에서 시인은 어느 가을 날 남산(南山)에 쓸쓸한 비가 뿌리고, 깊어 가는 장안의 가을밤에 스산한 바람이 부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뒤 6구에서는 남산에 황혼이 내리면서 부터 새벽이 오는 시간의 흐름 속에 귀화(鬼火)가 어지럽게 나타나는 광경이 묘사되고 있다.

만약 이하가 이러한 시를 남기지 안았다면
이하는 중국시사에서 언급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하 이전에 유귀(幽鬼), 요괴(妖怪)등의 초자연적인 사물을 풍부한 상상력과 환상으로 노래한 작품으로는 「초사(楚辭)」가 있는데 아마도 이하는 「초사(楚辭)」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불전(佛典)」과 육조(六朝)로 부터 유행한 불교설화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이하는 귀신과 신선 및 죽음을 묘사하면서
마치 이하 자신이 귀신을 본 듯이 서술하였기에 생동감이 넘쳤다. 또한 시어에 있어서도 일반시인들이 쓰지
않았던 ‘귀(鬼), 로(老), 제(啼), 한(寒)’과 같은 독특한 글자를 사용하였고 백색을
특별히 애호하여 음산함과 귀기감(鬼氣感)을 극대화시켰다. 이는 이하만의 독특한 풍격과 창작개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② 비상감․염세관(悲傷感․厭世觀)

이하의 시에는 비상감․염세관(悲傷感․厭世觀)이 나타나고 있다. 그의 시(詩)의 기저(基底)를 이루고 있는 일관(一貫)된 정서(情緖)는 비상감․염세관(悲傷感․厭世觀)으로, 자화상적인 시들로서 〈상심행(傷心行)〉, 〈춘귀창곡(春鬼昌谷)〉, 〈자창곡도락후문(自昌谷到洛後門)〉, 〈시제(示弟)〉등의 시에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상심행(傷心行)〉과 〈시제(示弟)〉를 보면,

咽咽學楚吟 애절한 노래 목메어 읊으며

病骨傷幽素 병든 몸 외로우니 더욱 서글퍼라

秋姿白髮生 가을 모습에 머리칼 세어가고

木葉啼風雨 나뭇잎은 비바람에 소리내어 운다

燈靑蘭膏歇 등불 어두우니 기름이 다하였고

落照飛蛾舞 가물거리는 불꽃에 불나비 춤추네

古壁生凝塵 옛벽엔 먼지가 이는데

羇魂夢中語 나그네 외로운 魂 꿈 속에서
중얼댄다

別弟三年後 아우와 헤어진 지 3년 후

還家一日餘 집에 돌아온 지 하루여

醁酹今夕酒 녹뢰는 오늘 저녁의 술이요

緗帙去時書 책들은 예전 그대로 일세

病骨猶能在 병든몸 아직 살아 남았으니

人間底事無 세상에 무슨 일인들 없으랴

何須問牛馬 牛馬를 물을 필요 어디 있으리

抛擲任梟盧 내던진 주사위에 모든 것 맡겼거늘

황족인 것을 자부하고, 또 세상을 놀라게 할만한 시재를 지니고 있었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불우한 생활을 보낸 이하는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가 비관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읍(泣),체(涕),루(淚),곡(哭)”등의 눈물과 울음을 나타내는 시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 외에 “비(悲), 수(愁), 한(恨)”등의 글자와 죽음을 뜻하는“사(死)”자(字)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냉(冷), 한(寒), 암(暗), 습(濕)”등의 형용사를 사용하여 쓸쓸하고 어두운
느낌을 주고 있다.

제4장 결론

이상으로 미루어 보아서 이하의 시는 초현실적이며, 상징주의적이다. ‘이백, 두보’나 ‘한유’등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시풍과 입지를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절을 했던 탓에 남긴 시의 수가 적고 나이가 어린 만큼의 그릇이 작았다는 평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하는 시작에 있어서 기존의 것을 답습하려하지 않았고, 단지 언어의 조합에 머물지 않는 감각 있는
시어와, 색채감, 비상감, 염세관, 신귀합일의 사상에서 볼 때 이하는 충분히 독창적으로 새로운 것을 발굴하려 하였다.

독창적인 관점에서 그를 시인으로 평가하자면, 문학을 예술이라는 범주에 놓았을 때 독창성은 예술에서 가장 우월하고 우선적인 가치를 지닌다. 다시 말하자면 기존의 것을 가다듬고 발전시키는 것은 쉬우나 하나의 장르 즉 자기의 시풍을 개척한다는 것은 그 가치가 남다른 것이다. 따라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유에서 유를 답습하여 창작하는 것과는 다른 차이가 있다. 또한 미학이라는 측면에서 범상치 않은 사후 세계에 대한 인식, 이단적인 수사법 등 물론 범인들이 보기에는
거북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것이 이하의 입장에서 파괴의 미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하의 생애를 그의 문학 작품들과 떼어서
볼 수 없다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즉 몰락한 귀족가정에 태어난 이하는 일찍부터 ‘한유’와 ‘황보식’ 등에게 인정과 후원을 얻었으나 경쟁자들의 질시와 비방을 받아 젊은 시절의 요원해하던 관직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좌절, 그리고 병고와 실의에 찬 불우한 생활은 오히려 그의 시작에 대한 모든 병적인 집착과 열정을 가능하게 하여 그의 시에 반영됨으로서 성당의
거봉으로 우뚝 솟을 수 있는 독특한 시풍을 남겼다는 점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출처] 李賀 詩의 特性硏究 |작성자 sdream60

http://blog.naver.com/sdream60/138337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