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자는 당나라 때 교방곡(教坊曲)인 《양하채상(楊下採桑)》에서 유래한 사패곡으로, 남당(南唐)의 후주(後主) 이욱(李煜)의《추노아령(醜奴兒令)》，그의 재상이었던 풍연사(馮延巳)의《나부미가(羅敷媚歌)》，북송 사인(詞人) 하주(賀鑄)의《추노아(醜奴兒)》，북송 시인 진사도(陳師道)의 《나부미(羅敷媚)》는 모두 채상자의 곡을 전사한 사패곡(詞牌曲)이다. 쌍조(雙調) 44자다.
본《채상자》는 관직에서 물러난 구양수가 만년에 안휘성 영주(潁州)의 서호(西湖)에 은거하면서 지은 작품이다. 영주는 지금의 안휘성 부양시(埠陽市)다. 송인종(宋仁宗) 황우(皇祐) 원년인 서기 1049년에 영주의 지주(知州)로 발령받은 구양수가 부임해서 보니 “백성들은 순박 화목하고, 땅은 기름지고 물은 달아 바람과 기운이 온화했다. 그래서 나는 개연히 그곳에서 마지막 삶을 보내려고 결심했다. 이후로 20년 동안 여러 관직을 전전하면서도 영주에서 품은 생각을 잠시도 잊지 않으면서 시시때때로 속마음을 글로써 표현하곤 했다.”[《사영시후서(思潁詩後序)》]
그리고 20년 후인 송신종(宋神宗) 희녕(熙寧) 4년 서기 1071년，구양수는 관문전학사(觀文殿學士)와 태자소사(太子少師) 직에서 물러나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영주로 돌아가 만년을 보내게 되었다. 구양수는 43세에 영주지주를 역임한 후에 다른 관직을 전전하다가 정확히 20년 후인 63세에 다시 돌아간 것이다. 구양수가 영주에 은퇴생활을 한 햇수는 3년 조금 넘는 기간이다. 그때 쓴 글들은 영주의 풍속에 영향을 받아 심후한 감정을 표현했다. 관직에서 은퇴한 그는 어떤 때는 무리르 지어 단체로 여행을 다녔으며 어떤 때는 혼자서 수레를 타고 유람을 다니기도 했다. 늘상 꽃무니가 그려진 배를 타고 섬이나 강가를 한가롭게 노닐며 영주지방의 산수와 풍광을 마음껏 즐겼다. 특히 영주의 서호의 아름다운 풍물과 서호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순박한 인정을 필력에 담은 시가 바로 《채상자》 10수인데 풍경을 묘사한 단어들은 마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其一
輕舟短棹西湖好(경주단도서호호)
경쾌한 배 짧은 노, 아름다운 서호
綠水逶迤(녹수위리)
푸른 물은 이러저리 감돌아 아득하다.
芳草長堤(방초장제)
긴 제방의 향초
隱隱笙歌處處隨(은은생가처처수)
가는 곳마다 은은한 생황소리
無風水面琉璃滑(무풍수면유리활)
바람 없는 호수의 물은 매끄러운 유리 같다.
不覺船移(불각선이)
배가 움직이는지도 모르는데
微動漣漪(미동연의)
조금만 움직여도 이는 잔물결에
驚起沙禽掠岸飛(경이사금약안비)
물새들이 놀라 호수가에서 날아 오른다.
其二
春深雨過西湖好(춘심우과서호호)
늦은 봄 비 지나간 뒤의 아름다운 서호.
百卉爭妍(백훼쟁연)
온갖 야생초들이 다투어 꽃을 피우고
蝶亂蜂喧(접란봉훤)
나비는 어지러이 날고 벌은 윙윙거리는데
晴日催花暖欲然(청일최화난욕연)
꽃을 재촉하는 맑은 날 햇살은 따스하다.
蘭橈畫舸悠悠去(란요화가유유거)
유유히 지나가는 난초 돛대의 화려한 유람선
疑是神仙(의시신선)
아마도 신선의 배가 아닐까?
返照波間(반조파간)
잔잔한 물결에 햇볕은 빛나고
水闊風高揚管弦(수활풍고양관현)
넓은 호수에 부는 바람은 풍악을 울린다.
其三
畫船載酒西湖好(화선재주서호)
술을 실은 꽃배, 아름다운 서호!
急管繁弦(급관번현)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거문고와 피리소리
玉盞催傳(옥잔최전)
옥잔은 몇 순배 돌아가는데
穩泛平波任醉眠(음범평파임취면)
잔잔한 물결 위에 고요히 떠서 취중에 잠이 든다.
行雲卻在行舟下(행운각재행주하)
허공의 뜬 구름은 오히려 배 밑으로 지나가고
空水澄鮮(공수징선)
하늘도 맑고 물도 맑아 시원하니
俯仰留連(부앙유연)
고개를 숙여도 들어도 머물고 싶은 곳
疑是湖中別有天(의시호중별유천)
아마도 호수의 수중에 별유천지가 있는가?
其四
群芳過後西湖好(군방과후서호호)
꽃이 피고 지는 아름다운 서호!
狼籍殘紅(낭자잔홍)
시들어 떨어진 꽃봉오리 수북이 쌓이고
飛絮濛濛(비서몽몽)
버들개지 하늘하늘 날리는데
垂柳闌幹盡日風(수류란간진일풍)
수양버들 난간에 하루종일 바람이 분다.
笙歌散盡遊人去(생가산진유인거)
생황소리 그치고 유람객 돌아가자
始覺春空(시각춘공)
비로소 허전한 봄날임을 알겠다.
垂下簾櫳(수하염롱)
창문에 쳐진 주렴 밖에
雙燕歸來細雨中(쌍연귀래세우중)
내리는 보슬비 속에 제비가 짝지어 날아든다.
其五
何人解賞西湖好(하인해상서호호)
누가 다 보았겠는가? 아름다운 서호를!
佳景無時(가경무시)
아름다운 경치는 사시사철이라
飛蓋相追(비개상추)
급한 마음에 비경을 찾으려고
貪向花間醉玉卮(참향화간취옥치)
꽃밭을 찾아 옥잔 술에 취한다.
誰知閑憑闌幹處(수지한빙란간처)
한가한 마음에 난간에 기대는데
芳草斜暉(방초사운)
향초는 석양빛에 빛난다.
水遠煙微(수원연미)
물은 멀리 안개 속에 희미한데
一點滄洲白鷺飛(일점창주백로비)
저 멀리 창랑주에 백로가 난다.
其六
清明上巳西湖好(청명상사서호호)
청명절 삼월 삼짇날, 아름다운 서호!
滿目繁華(만목번화)
눈부시게 화려한 차림으로
爭道誰家(쟁도수가)
길을 다투는 이 누구인가?
綠柳朱輪走鈿車(녹류주륜전거)
푸른 버드나무 길을 금빛 수레가 달린다.
遊人日暮相將去(유인일모상장거)
해가 저물어 돌아가려는 유람객들
醒醉喧嘩(성취훤화)
취하거나 깨거나 모두 왁자지껄 떠들고
路轉堤斜(노전제사)
경사진 둑길을 돌아
直到城頭總是花(직도성두총시화)
곧바로 상문 앞에 이르니 모두가 꽃밭이다.
其七
荷花開後西湖好(하화개후서호호)
만개한 부용화, 아름다운 서호!
載酒來時(재주래시)
술 실은 배가 다가오는데
不用旌旗(불용정기)
정기는 달지 않았고
前後紅幢綠蓋隨(전후홍동록개수)
앞뒤로 붉은 당기(幢旗)에 녹색 일산이 따른다.
畫船撐入花深處(화선탱입화심처)
꽃배를 저어 깊은 꽃밭에 세우고는
香泛金卮(향범금치)
향기 넘치는 금술잔에 술을 마신다.
煙雨微微(연우미미)
안개비는 보슬보슬 내리고
一片笙歌醉裏歸(일편생가취이귀)
한가락 생황소리에 취하여 돌아간다.
其八
天容水色西湖好(천용수색서호호)
하늘도 호수물로 같은 색, 아름다운 서호!
雲物俱鮮(운물구선)
보이는 풍경은 모두 청아하고 신선한데
鷗鷺閑眠(구로한면)
갈매기와 해오라기는 한가하게 낮잠을 즐기고
應慣尋常聽管弦(응관심상청관현)
그 동안 익숙해진 풍악소리 듣는다.
風清月白偏宜夜(풍청월백편의야)
맑은 바람 밝은 달은 한 밤중이 제격이고
一片瓊田(일편경전)
한 뙈기 텃밭은 옥이 자라나는 경전(瓊田)이다.
誰羨驂鸞(수헌참란)
그 누가 봉황이 끄는 수레를 부러워하겠는가?
人在舟中便是仙(인재주중편시선)
배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신선인 것을
其九
殘霞夕照西湖好(잔하석조서호호)
석양에 달려 있는 노을, 아름다운 서호!
花塢蘋汀(화오빈정)
화단 길, 마름섬
十頃波平(십경파평)
넓디넓은 호수의 물결은 잔잔하기만 한데
野岸無人舟自橫(야안무인주자횡)
인적 없는 들과 호수가에, 배만 저절로 흘러간다.
西南月上浮雲散(서남월상부운산)
서남쪽에서는 달이 떠오르니 뜬 구름은 흩어지는데
軒檻涼生(헌람양생)
난간에는 서늘한 기운 감돌고
蓮芰香清(연기향청)
수련과 마름의 향기가 새롭다.
水面風來酒面醒(수면풍래주면성)
어느덧 수면에 바람이 일어 취한 얼굴 깨운다.
其十
平生爲愛西湖好(평생위애서호호)
평생 사랑하나니, 아름다운 서호!
來擁朱輪(내옹주륜)
여지껏 붉은 수레의 영화를 찾았으나
富貴浮雲(부귀부운)
부귀는 한낱 뜬 구름
俯仰流年二十春(부앙유년이십춘)
땅을 쳐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살기를 20년
歸來恰似遼東鶴(귀래흡사요동학)
이재 살곳을 찾아 돌아온 요동학 신세
城郭人民(성곽인민)
성시의 백성들은
觸目皆新(촉목개신)
몰라보게 달라진 나를 보고
誰識當年舊主人(수식당년구주인)
어찌 알겠는가? 내가 옛날 이곳 지주(知州)였는지를!
※요동학(僚東鶴)
전한 왕조의 요동(遼東) 출신인 정령위가 영허산(靈虛山)에 들어가 신선술을 배워 학이 되어 고향에 돌아와 성문의 화표주(華表柱)에 읹아 있는데 한 소년이 활을 쏘려고 하자 곧바로 하늘로 날아 허공을 몇 번 날더니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새야 새야, 정령위여! 집 떠난지 천년 만에 돌아왔네. 성곽은 의구한데 그때 백성들이 아니로구나! 어찌 신선술을 배우지 않아 무덤이 총총하나![有鳥有鳥 丁令威 ，去家千年今始歸。城郭如故人民非，何不學仙冢壘壘] 그리고는 하늘 높이 날아가버렸다. [搜神記]
2020-03-17 15: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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