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庙碑(야묘비)

육구몽(陸龟梦)

자 노망(魯望). 호 천수자(天隨子)·보리선생(甫里先生). 강소성 소주(蘇州) 출생. 소주의 명문 출신으로 어렸을 때 이미 육경(六經)에 능통하였으며, 특히 《춘추(春秋)》에 조예가 깊었다. 진사시험에 추천되었으나 합격하지 못하고 잠시 장박(张搏)의 막료(幕僚)로 있었다. 이어 송강(松江)의 보리(甫里)에 은거하며 농경(農耕)을 장려하고 개간과 농업의 개량사업에 힘쓰는 한편 시서를 즐기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냈다. 얼마 후 조정에서 좌습유(左拾遺)의 관직을 내리고 불렀으나 곧 죽었다. 전원생활을 노래한 시에 송(宋)나라의 전원시와 일맥상통하는 섬세한 관찰력이 엿보인다. 친구인 피일휴(皮日休)와 서로 주고받은 화답시(和答詩)가 유명하며, 농서(農書)인 《뇌사경(耒耜經)》(1권), 시문집 《당보리선생문집(唐甫里先生文集)》(20권)《입택총서(笠澤叢書)》(4권) 등의 저서와 풍자산문집 죽택총생(竹澤叢生) 등이 있다.

본 야묘비는 비유, 우화, 역사를 인용하여 부패한 관리들의 횡포를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처음에는 들판의 이름없는 사당의 토목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농민들의 미신을 믿는 어리석은 행위에 대해 동정을 표하다가 돌연히 붓끗을 현실로 돌려 흉악한 관리들의 부패한 면모를 폭로했다.

碑者悲也(비자비야)

비(碑)는 비(悲)다.

古者懸而窆用木(고자현이폄용목)

옛날 하관(下棺)할 때 나무로 패를 만들어 걸어놓다가

後人書之以表其功德(후인서지이표기공덕)

후세 사람들이 글을 새겨 죽은 사람의 공덕을 기렸다.

因留之不忍去(인유지부인거)

인정을 생각해서 차마 들어낼 수 없었음으로

碑之名由是而得(비지명유시이득)

이런 이유로 비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自秦漢以降(지진한이항)

진한시대 이후로는

生而有功德政事者(생이유공덕정사자)

살아서 정치에 공덕이 있는 사람을 위해

亦碑之(역비지)

비석을 세우기 시작하고

而又易之以石(이우역지이석)

또한 재료가 돌로 바뀌고

失其稱矣(실기칭의)

원래의 뜻을 잃었다.

余之碑野廟也(여지비야모야)

내가 말하려고 하는 비는 곧 야묘비(野廟碑)다.

非有政事功德可紀(비유정사공덕가기)

정사를 잘해 이룬 공덕을 기록한 비가 아니라

直悲夫甿竭其力(직비부맹갈기력)

온힘을 다해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들들 슬퍼하기 위해서이고

以奉無名之土木而已矣(이봉무명지토목이이의)！

흙과 나무로 만든 우상을 못 받들게 하기 위해서다.

甌越間好事鬼(구월간호사귀)

구월(甌越) 사람들은 귀신 받들기를 좋아하여

山椒水濱多淫祀(산초수빈다음사)

산꼭대기나 강변에는 우상을 섬기는 야묘가 많다.

其廟貌有雄而毅(기묘모유웅이의)

그 사당의 모습은 웅장하고 굳세며

黝而碩者(유이석자)

또한 검고 크다.

則曰將軍(즉왈장군)

그래서 장군이라고 칭한다.

有溫而願(유온이원)

온화하고 선량하며

晰而少者(석이소자)

백설같이 흰 젊은 귀신이 있으니

則曰某郎(즉왈모랑)

즉 모랑이라고 부른다.

有媼而尊嚴者(유온이존엄자)

나이가 든 부인으로 엄숙한 표정의 귀신은

則曰姥(즉왈노)

즉 할미귀신이라고 부른다.

有的是容貌美麗的婦人(유적시용모미려적부인)

더욱이 용모가 매우 아름다운 부녀귀신도 있으니

就稱爲姑(취칭위고)

고(姑)라는 호칭을 얻었다.

有婦而容豔者(유부이용염자)

부인의 용모가 아름다워서

則曰姑(즉왈고)

즉 고(姑)라 한 것이다.

其居處則敞之以庭堂(기거처즉창지이정당)

넓은 지방에 분포되어 모셔지는 귀신들이 거처하는 사당은

峻之以陛級(준지이계급)

계단이 매우 높고

左右老木(좌우노목)

그 좌우에는 오래된 나무가 있는데

攢植森拱(찬식삼공)

조밀하고 무성하다.

蘿蔦翳於上(라조예어상)

담쟁이는 그 위를 덮고 있다.。

鴟鴞室其間(치효실기간)

수리부엉이가 그 사이에 둥지를 틀고 있는데

車馬徒隸(거마도체)

거마와 제사를 돕는 귀졸의 모습은

叢雜怪狀(총잡괴상)。

각양각색으로 그 형태가 괴기하다.

甿作之(맹작지)

농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고

甿怖之(맹포지)

농민들 스스로 무서워하니

走畏恐後(주외공후)。

두려움을 서로 다투어

大者椎牛(대자추우)；

큰 것은 소를 잡고

次者擊豕(차자격시)，

중간 것은 돼지를 잡으며

小不下犬雞魚菽之薦(소불하계어숙지천)。

작은 것은 개, 닭, 물고기나 채소 등을 바친다.

牲酒之奠(희주지존)，

제물로 올리는 희생물은

缺於家可也(결어가가야)，

집안의 조상제사에는 부족해도 상관없지만

缺於神不可也(결어신불가야)。

귀신에게 바치는 제물은 부족하면 안 된다.

不朝懈怠(부조해태)，

하루라도 절을 올리는 일을 게을리하면

禍亦隨作(화역수작)，

재앙이 들이닥쳐

耋孺畜牧栗栗然(질유축목율율연)。

노인을 봉양하거나 애들을 기르는 사람들은 전전긍긍한다.

疾病死喪(질병사상)，

사람들이 질병으로 죽거나 크게 몸을 상하게 되면.

甿不曰適丁其時耶(맹불일적정기시야)！

죽음과 질병을 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而自惑其生(이자혹기생)，

자기도 이해하지 못하고 함께 미혹되어

悉歸之於神(슬귀지어신)。

귀신에게 모든 것을 의지한다.

雖然(수연)

일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若以古言之(약이고언지)

옛날부터 내려오는 일이기는 하나

則戾(즉려)

그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고 한다.

以今言之(이금언지)

그러면서도 오늘날 하는 말들은

則庶乎神之不足過也(즉서호신지부족과야)。

마치 신은 원망할 필요도 없는 하찮은 존재라고 한다.

何者(하자)？

어째인가?

豈不以生能御大災(기불이생능어대재)，

그 귀신이 대재앙을 막을만큼 원기왕성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捍大患(한대환)，

재앙을 받아 죽은 사람들도

其死也則血良於生人(기사야즉혈량어생인)。

역시 살아있는 사람들로부터 혈식을 받아먹는데

無名之土木(무명지토목)

토목으로 만들어진 이름 없는 우상들은

不當與御災(부당어여재)，

당연히 사람들의 재앙을 막아줄 수 없음이다.

捍患者爲比(한환자위비)

재난을 막는 것들을 서로 비교해 보면

是戾於古也明矣(시려어고야명의)。

옛날부터 불합리한 일이라고 분명히 밝히지 않았는가?

今之雄毅而碩者有之(금지웅의)

오늘은 웅대하며 강직하나

溫願而少者有之(온원이소자유지)

온화하고 선량한 젊은 우상도 있다.

升階級(승계급)

그들은 섬돌에 올라

坐堂筵(자당연)

대청에 좌정하여

耳弦匏(이현포)

노래를 들으며

口粱肉(구량육)29）

산해진미를 먹는다.

載車馬擁徒隸者(재거마옹도예자)

하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거마를 타고

皆是也(개시야)。

다니는 그런 자들이다.

解民之懸清民之暍(해민지현청민지갈)

백성들의 고통을 해결해주려는 생각을

未嘗怵於胸中(밋ㅇ술어흉중)。

지금껏 가슴속에 품은 적이 없다.

民之當奉者(민지당봉자)，

백성들이 섬김을 받다가도

一日懈怠(일일해태)，

하루만 태만해도

則發悍吏(즉발한리)

즉시 혹독한 관리를 보내

肆淫刑(사음형)，

멋대로 혹형을 가하고

驅之以就事(구지이위사)，

몽둥이로 찔질하여 원하는 바를 얻는다.

較神之禍福(교신지화복)，

우상이 주는 화복을 비교할 때

孰爲輕重哉(수위경중재)？

어느 편이 감히 경하고 중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平居無事(평거무사)，

그들이 평소에 무사히 지낼 때는

指爲賢良(지위현량)，

현명한 관리라고 떠받들여지나

一旦有大夫之憂(일단유대부지우)，

일단 천하가 어지러워져

當報國之日(당보국지일)，

나라에 보답해야 될 때가 되면

則僥脆怯(즉요취겁)

갈팡질팡 어쩔 줄 모르고 비겁하기 짝이 없게 된다.

顛躓竄踣(전지찬북)

기고 엎어지면서 꼬리를 빼다가도

乞爲囚虜之不暇(걸위수로지불가)。

포로로 될 틈을 놓치지 않는다.

此乃纓弁(차내영변)

이들이 바로 예복을 입고

言語之土木爾(언어지토목이)，

말할 줄 아는 토목으로 만들어진 우상이니

又何責其真土木耶(우ㅏ책기진토목야)？

하물며 진짜 토목 우상을 어찌 책망하겠는가?

故曰(고왈)

때문에

所以说(소이설)，

그렇게들 말한다.

以今言之(이금언지)，

그러면서도 오늘날 하는 말은

則庶乎神之不足過也(즉서호신지부족과야)。

마치 토목우상은 원망할 필요 없는 하찮은 존재라고 한다.

而为诗(이위시)，

이에 시 한수에 제목을 붙여

以纪其末(이기기말)：

비석의 후면에 새긴다.

土木其形(토목기형)，

야묘의 토목으로 만든 귀신상이

竊吾民之酒牲(절오민지희생)

백성들의 제사용품을 도적질해 먹는 행위는

固無以名(고무이명)

원래부터 옳지 않은 일이다.

土木其智(토목기지)，

지체 높은 관리들은 토목우상이니

竊吾君之祿位(절오군지록위)，

군왕의 녹봉과 작위를 훔치는 행위다.

如何可儀(여하가의)！

그런데 어떻게 그런 행위를 따르겠는가?

祿位頎頎(녹위기기)

녹봉이 많고 지위가 높은 고관이나 귀척이라고 하나

酒牲甚微(주생심미)

매우 박한 술과 제물이나마

神之享也(신지형야)

귀신들은 즐긴다.

孰雲其非(숙운기비)！

누가 감히 그것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視吾之碑(시오지비)，

나의 비석을 보게 되면

知斯文之孔悲(지사문지공비)

그 안에 매우 큰 비애와 우수가 있음을 알리라.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