橡媼嘆(상온탄)

- 도토리 줍는 노파를 보고 한탄하노라! -

피일휴(皮日休)

도토리 줍는 노파의 형상과 그의 비참한 생활은 봉건체제 하의 농민들이 맞이해야 했던 비참한 운명을 그대로 그려낸 축도다. 그들은 지주의 고리대착취를 받아야했고 탐관들의 약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더욱이 시인은 시의 마지막 대목에 가서 정권을 빼앗고자 춘추 때 제나라의 전성자(田成子) 상(常)이 봄에 큰말로 양식을 빌려주었다가 가을에 작은말로 받아들인 이야기를 빌어 당시의 집권자들은 심지어 거짓 인의일망정 농민들에게 추호의 은혜도 베풀 줄 모른다고 질책했다.

그는 그의 대표적인 산문 녹문은서(鹿文隱書)에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 옛 사람들은 노하여 사람을 죽이지만 지금 사람들은 웃으며 사람을 죽인다. 옛날에 아전을 둔 것은 도적을 잡기 위해서이나 지금 아전은 두면 도적이 된다. 옛 관료들은 천하를 자기의 짐으로 삼았기에 스스로 천하를 걱정하였지만 오늘 날 관리들은 자기를 천하의 짐으로 보기에 사람들이 관리들을 걱정거리로 안다. >

秋深橡子熟(추심상자숙)

깊은 가을 산에 도토리 익어

散落榛蕪岡(산락진무강)

우거진 숲 속에 떨어진다.

傴僂黃發媼(구루황발온)

등이 꼬부라진 백발노파

拾之踐晨霜(습지천신상)

새벽 서리 밟으며 도토리 줍는다.

移時始盈掬(이시시영국)

불편한 몸 움직여 한 주먹 줍는데

盡日方滿筐(진일방만광)

하루 종일 걸려 광주리 채운다.

幾曝複幾蒸(기폭복기증)

햇빛에 말리고 가마솥에 쪄서

用作三冬糧(용작삼동량)

길고 추운 겨울양식 삼는다.

山前有熟稻(산전유숙도)

산 밑에서는 누렇게 익은 벼

紫穗襲人香(자수습인향)

구수한 향기 풍기는 황금빛 이삭

細獲又精舂(제획우정용)

알뜰하게 거두고 정성들여 찧어

粒粒如玉璫(립립여옥당)

알알마다 마치 옥구슬 같다.

持之納於官(지지납어관)

때가 되어 관아에 바치니

私室無倉箱(사실무창상)

농부 집 창고는 쓸데가 없다.

如何一石餘(여하일석여)

어찌하여 한 섬이 넘는 쌀을

只作五鬥量(지작오투량)

다섯 말이라고 우기는가?

狡吏不畏刑(교리불외형)

교활한 관리는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貪官不避贓(탐관불피장)

탐관은 장물 갖기를 꺼려하지 않는다.

農時作私債(농시작사채)

농사철 때 쓴 사채로

農畢歸官倉(농필귀관창)

가을 수확 모두 관가의 창고에 쌓인다.

自冬及於春(자동급어춘)

겨울부터 봄철 닥칠 때까지

橡實誑饑腸(상실광기장)

도토리로 주린 창자 채운다.

吾聞田成子(오문전성자)

내가 듣기에 전성자는

詐仁猶自王(사인유자왕)

거짓 인을 베풀어 왕이 되었다고 했지만

籲嗟逢橡媼(유차봉상온)

아아, 도토리 줍는 노파를 보니

不覺淚沾裳(불각루점상)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 옷깃 적시누나!

皮日休(834-883)

당나라 말기 호북성(湖北省) 양양(襄陽) 사람. 자는 일소(逸少) 또는 습미(襲美)이고, 호는 취음선생(醉吟先生) 또는 간기포의(間氣布衣)다. 일찍이 고향 근처의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하여 시와 술을 벗 삼았다. 이 시기의 작품은 <피자문수(皮子文藪)>에 실려 있다. 의종(懿宗) 함통(咸通) 8년(867)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2년 뒤 소주자사(蘇州刺使)의 막료가 되었는데, 육구몽(陸龜蒙)과 창화(唱和)한 시를 남겼다. 뒤에 입경하여 저작랑과 태상박사(太常博士) 등을 지냈다. 희종(僖宗) 건부(乾符) 5년(878) 황소(黃巢)의 군대가 강절(江浙)을 넘어오자 황소에게 잡혀 한림학사 직을 받았다. 황소가 패한 뒤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다. 당 조정에 의해 살해되었다고도 하고, 황소에게 피살되었다고도 한다. 또는 오월(吳越)로 가 전류(錢鏐)에 의탁했다고도 하고, 숙주(宿州) 일대를 떠돌았다고도 한다. 시에서는 신악부운동을 계승했고, 산문에서는 고문운동을 이어받았다. 저서에 <송릉집(松陵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