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산인가(江湖散人歌)

- 강호에 숨어사는 은자의 노래 -

육구몽(陸龜蒙)

강호산인이란 구애받음이 없이 자유롭게 사는 사람을 말한다. 즉 육구몽 자신을 지칭하낟.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자신이 선택한 은거의 한적하고 평안한 삶을 표현하고 있지만 단순히 개인적인 부분만을 표한 것에 그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곳곳에 자신의 정치에 대한 견해와 현실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은 비록 은거해새 한가롭게 생활하고 있지만, 현실은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시인은 현실을 생각하며 슬픔을 내비치고 있다. 특히 마지막 구절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가 왜 백성을 구하는 일에 전념하지 않고 나 같은 사람에게 강호산인이라는 호를 내리시는가? 하고 묻는 종결은 의미심장하다.

江湖散人天骨奇(강호산인무골기)

강호를 떠도는 자연인은 사람됨이 특이하고

短發搔來蓬半垂(단발소래봉반수)

단발은 손으로 긇어 흐트러진 채 드리워져 있다.

手提孤篁曳寒繭(수제고황예한견)

손에는 한 가닥 대나무 낚싯대와 낚싯줄을 들고

口誦太古滄浪詞(구송태고창랑사)

입으로는 옛날 창랑사를 부른다.

詞雲太古萬萬古(사운태고만만고)

노래 말에 이르기를 옛날 태고적에는

民性甚野無風期(민성심야무풍기)

백성들 성정이 아주 소박해 풍모를 따지지도 않았다.

夜棲止與禽獸雜(야서지여금수잡)

밤에는 집에 돌아가 짐승들과 함께 어울리고

獨自構架縱橫枝(독자구가종횡지)

홀로 스스로 나못가지 위에 집을 짓는다.

因而稱曰有巢氏(인이칭왕유소씨)

그래서 유소씨 이름이 전해지는 것이고

民共敬貴如君師(민공경귀여군사)

백성들은 서로 존중하기를 마치 군주와 스승처럼 했다.

當時只效烏鵲輩(당시지효오작배)

당시에는 단지 까치들이 우두머리를 쫓는 법도를 따른 것뿐이지

豈是有意陳尊卑(기시유의진존비)

어찌 의도적으로 귀한 것과 비천한 것을 구분했겠는가?

無端後聖穿鑿破(무단후성천착파)

후세의 성인들이 견강부회하여 법도를 깨뜨릴 리가 없듯이

一派前導千流隨(일파전도천류수)

한 줄기 물결이 천 갈래의 강물을 인도한다.

多方惱亂元氣死(다방뇌란원기사)

잡다한 번뇌는 머리를 어지럽히고 원기를 죽이니

日使文字生奸欺(일사문자생간사)

날이 갈수록 문장에 간사와 거짓이 늘어간다.

聖人事業轉銷耗(성인사업전소모)

성인의 일이란 없어진 것을 되돌려 바로 잡아야 하는데

尚有漁者存熙熙(상유어자존희희)

오히려 고기잡는 어부가 즐겁게 생각한다.

風波不獨困一士(풍파불독곤일사)

몰려온 풍파는 은사를 내버려두지 않지만

凡百器具皆能施(범백기구개능시)

무릇 많은 도구들은 모두 다 저절로 갖추어진다.

罛疏滬腐鱸鱖脫(중소호부로궐탈)

구멍나고 썩은 그물과 어구로 농어와 쏘가리가 도망함은

止失檢馭無讒疵(지실검어무참자)

내가 제대로 얽매지 못해서지 누가 방해해서가 아니다.

人間所謂好男子(인간소위호남자)

세상에 소위 호남이라는 사람들은

我見婦女留須眉(아견부녀유수미)

내 보기에 부녀자가 수염을 달고 있는 경우다.

奴顏婢膝真乞丐(노안비슬진걸개)

노비의 안색과 무릎은 진실로 구걸하는 거지근성이거늘

反以正直爲狂癡(반이정직위광의)

도리어 정직한 것에 빠졌다고 한다.

所以頭欲散(소이두욕산)

머리를 산발하고 싶지만，

不散弁峨巍(불산변아위)

우뚝 솟은 모자를 벗지 못하고

所以腰欲散(소이요욕산)

허리를 편안하게 뻗고 싶지만

不散珮陸離(불산패육리)

화려한 패옥을 떼어내지 못한다.

行散任之適(생산임지적)

가고 싶은 곳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가고

坐散從傾欹(좌산종경의)

앉고 싶으면 마음 내키는 대로 몸을 기울인다.

語散空穀應(아선공곡응)

하늘에 응답하여 마음대로 말하고

笑散春雲披(소산춘운피)

봄기운 달아나도록 마음껏 웃는다.

衣散單複便(의산단복편)

홑옷이던 겹옷이든 편한 대로 입고

食散酸鹹宜(의산산함의)

시든 짜든 무엇이든 잘 먹는다.

書散渾真草(서산혼진초)

글은 眞書든 草書든 마음대로 섞어 쓰고

酒散甘醇醨(주산감순리)

달콤한 술이든 독한 술이든 가리지 않는다.

屋散勢斜直(옥산세사직)

사는 집은 기우려졌던 반듯하건 상관없고

樹散行參差(수산행참차)

나무는 들쑥날쑥 제 멋대로 자란다.

客散忘簪屨(객산망잠구)

객이 비녀를 꽂거나 신을 신는 일도 잊어 버려도 상관없고

禽散虛籠池(금산허농지)

짐승들은 연못이나 새장에 가두지 않았다.

物外一以散(물이일이산)

외적인 세상사에는 한 가지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中心散何疑(중신삼하의)

마음 속에 어찌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 있겠는가？

不共諸侯分邑里(불공제후분읍리)

읍과 마을을 제후들과 함께 나누어갖지 않고

不與天子專隍陴(불여천자전황비)

천자처럼 성곽 밖의 물길을 멋대로 내지 않는다.

靜則守桑柘(정즉수상자)

고요하면 뽕나무 지키고

亂則逃妻兒(란즉도처아)

세상이 혼란하면 처자와 자식을 데리고 피난간다.

金鑣貝帶未嘗識(금표패대미상식)

황금재갈이나 장식새긴 허리띠 알지 못하는데

白刃殺我窮生爲(백인살아궁생위)

날카로운 칼로 나같은 궁생 죽여 무엇하겠는가?

或聞蕃將負恩澤(혹문번장부은택)

간혹 변장들이 황제의 은택을 입어

號令鐵馬如風馳(호령철마여풍치)

철마를 호령하며 바람처럼 종횡한다는 말을 들었다.

大君年小丞相少(대군연소승상소)

황제는 아직 나리가 어리고 승상의 재목은 적어

當軸自請都旌旗(당축자청도정기)

권력을 잡은 자가 스스로 군대를 통솔하겠다고 자청한다.

神鋒悉出羽林仗(신봉슬우림장)

날카로운 칼은 모두 羽林軍의 의장대에 나와 있고

繢畫日月蟠龍螭(궤화일월번룡리)

일월기(日月旗)와 용기(龍旗)가 서로 휘감겨있다.

太宗基業甚牢固(태종기업심뢰고)

태종은 나라의 기틀을 반석처럼 단단히 다져

小醜背叛當殲夷(소추배반당섬이)

추악한 반역의 무리들을 모두 섬멸했다.

禁軍近自肅宗置(츰군근자숙종치)

금군은 근래 숙종께서 설치했는데

抑遏輔國爭雄雌(억알보국쟁웅자)

이를 장악한 환관 이보국(李輔國)과 자웅을 다투었다.

必然大段剪凶逆(필연대단전흉역)

흉악한 역적을 제거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지만

須召勁勇持軍麾(수소경용지군휘)

반드시 용맹한 군사들은 지휘권을 장악해야 한다.

四方賊壘猶占地(사방적루유점지)

사방이 도적의 진지가 되어 오히려 점령당했고

死者暴骨生寒饑(사자포골생한기)

죽은 자의 뼈는 굴러다니고 산자는 추위와 굶주림에 떨었다.

歸來輒擬荷鋤笠(귀래첩의하서립)

전원으로 돌아와 도롱이 쓰고 호미로 농사지으려 하지만

詬吏已責租錢遲(후리이책조전지)

분노한 관리는 이미 세금을 늦게 낸다고 책망한다.

興師十萬一日費(흥사십만일일비)

동원된 군사들에게는 하루에 10만 전이 들어가지만

不啻千金何以支(불시천금하이지)

천금이나 되는 돈 어디에서 구한단 말인가?

只今利口且箕斂(지금이구차기렴)

지금은 단지 감언이설로 키를 들고 세금을 거두는데

何暇俯首哀惸嫠(하가부수애경리)

무슨 여유가 있어 독신이나 과부들을 되돌아 볼 수 있겠는가?

均荒補敗豈無術(군황보패기무술)

재난을 구재하고 실정을 회복하는데 어찌 방책이 없겠고

布在方冊撐頹隵(포재방책탱퇴희)

또한 책에는 위태로움을 구하는 방책이 가득 적혀있도다!

冰霜襦袴易反掌(빙상유과이반장)

얼음 같은 추위정도는 옷과 저고리로 쉽게 견딜 수 있음은

白面諸郎殊不知(백면제랑수부지)

백면서생 관리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

江湖散人悲古道(강호산인비고도)

강호산인은 옛 도리가 지켜지지 않음을 슬퍼하면서도

悠悠幸寄羲皇傲(유유행기희황오)

옛날 복희씨처럼 고고하게 지낼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官家未議活蒼生(관가미의활창생)

관리들은 창생을 살리는 방책을 의논하지 않고

拜賜江湖散人號(배사강호산인호)

그저 강호산인이라는 칭호만 하사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