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婦吟(진부음)

위장(韋莊 : ?-910)

당말오대(唐末五代) 시인으로 자는 단기(端己)다. 섬서성 장안(長安) 두릉(杜陵) 출신이다. 당현종 때 재상을 지낸 위견소(韋見素)의 후손이다. 일찍 부모를 잃고 곤공한 처지에서도 학문에 힘썼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매우 뛰어났다. 후에 과거를 위해 머물고 있었던 장안에서 황소(黃巢)의 란으로 인해 발생한 참혹한 모습을 목격했다. 위인이 곤궁하고 외로운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활달하여 거리낌이 없었다. 광명(广明) 원년（880）45세에 장안으로 돌아와 과거에 응했으나 그때 마침 황소의 기의군이 장안을 공격하는 때를 만나 전란의 와중에 휩쓸리게 되어 형제자매들과 헤어지게 되었다. 중화 2년(882）장안을 떠나 낙양으로 이주했다. 중화 3년 봄 48세에 진부음을 지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란을 피해 강남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10년 동안 술과 여자로 불우하게 세월을 보내고 58세 때 장안으로 돌아왔다. 과거에 응시하여 평소에 품고 있었던 치국평천하의 포부를 펼쳐보려고 했다. 건녕(乾宁) 원년(894）59세에 진사에 합격하여 교서랑(校书郎)에 임명되었다. 건녕 4년(897) 62세 때 당시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로 양천선유사(兩川宣諭使)로 임명된 이순(李洵)의 서기(書記)가 되어 함께 서천(西川)으로 들어가 당시 서천절도사(西川节度使) 왕건(王建)의 인정을 받았다. 다시 장안으로 돌아온 위장은 좌보궐(左补阙)에 임명되었다. . 천복(天复) 원년(901）66세에 왕건의 초빙을 받아 서천으로 들어가 그의 서기가 되었다. 천우(天祐) 4년(907），주온(朱温)이 당제국을 멸망시키자 위장은 왕건에게 강권하여 제호(帝號)를 칭하게 했다. 전촉의 황제(皇帝)가 된 왕건은 위장을 재상으로 임명했다. 전촉의 모든 제도를 마련한 위장은 촉에서 생애를 마쳤다. 그때가 75세로써 성도(成都) 화림방(花林坊)에서 였다.

그는 사(詞)로써 이름이 높았고 시가로써는 완화집(浣花集) 10권이 있다. 강남에 있을 때의 작품은 대개 환락·퇴폐·자조(自嘲)의 심정을 노래한 낭만적인 것이 많다.

당희종(唐僖宗) 광명(廣明) 원년(880）황소(黃巢)가 이끄는 농민군이 장안(長安)을 공격할 때 위장(韋莊)은 과거를 보기 위해 성 안에 있었다. 3년 후인 중화(中和) 3년(883）당시 내란으로 인한 백성들이 참혹한 광경을 귀로 듣고 눈으로 목격하고 한 그는 한 편의 장편 서사시 진부음을 지어 완성했다. 이 시는 당시 세상에 유행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천에 써서 거리에 걸어놓고 그를 칭하기를 진부음수재(秦婦吟秀才)라고 불렀다. 위장은 황소의 농민군이 장안에 입성할 때 낭패한 일반 공경들과 관군들 및 백성들의 혼란상을 가공의 인물인 피난 중인 여인의 입을 빌려 1666자에 달하는 장편의 서사시를 지어 전쟁의 참상을 묘사했다. 당시 토벌군 대장 양복광(楊複光) 휘하의 부하장수였던 왕건을 성토했던 이 시를 숨기기 위해 위장은 전력을 다했다. 집안사람들에게 특별히 당부해서 진부음을 필사한 포백을 금하고 시중에 널려 있는 자신의 글을 수거하는데 온 힘을 기우렸다. 후에 그의 동생 위알(韋藹)이 위장의 작품들을 모은 완화집 10권을 편찬할 때도 역시 이 시는 수록하지 않았다. 그리고 위장 사후 천여 년의 세월이 지난 청나라 광서(光緒) 말년에서야 이르러 영국인 스타인(Aurel Stein)과 프랑스인 페리오(Paul Pelliot)가 중국 감숙성 돈황현(敦煌縣) 천불동(千佛洞)에서 훔쳐간 고대유물 중에서 이 시의 전문이 발견되었다. 1924년 왕국유(王國維)가 장구(張龜)에 의해 필사한 파리 도서관 판본과 안우성(安友盛)에 의해 필사된 런던박물관 판본을 근거로 교정을 보아 원래의 시 형태로 복원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진부음(秦婦吟)은 전란을 만나 고향을 잃고 세상을 떠돌던 한 부녀자의 입을 통해 혼란에 빠진 비참한 현실을 표현했다. 전란의 과정 중에 당조에 반기를 든 황소기의군 뿐만 아니라 토벌군에 해당하는 관군 모두 궤도를 이탈한 파괴적 행위를 성토했다. 봉건사대부들 입장에서 반란군에 해당한 농민군에게 대해 비난을 가했으나 마음속으로는 대부분이 관군에게 있는 잘못을 숨길 수 없다고 생각하여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적시했다. 본 시의 후반부에 길에서 만난 노인이 ‘황소농민군이 지나간 후에 자신의 가산이 반이나 남았지만 후에 락양(洛陽)으로 진군하여 주둔한 관군에게 남은 재산을 모두 약탈당했다'고 했다. “바람처럼 대문을 들어서서 말에서 내리더니 방을 비우고 부대를 뒤집어 한줌의 흙만 남았다네.” 결국 “가산은 모두 없어지고 골육은 유민이 되어 뿔뿔이 흩어지고 그 후로 지금까지 몸에는 고난만 남았네” 더욱 참담한 이야기는 “산중에 모여 사는 난민들 천가, 만가이네!”이다. 이와 같은 싯귀는 당시 사대부들의 심경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위장은 만년에 이 시를 거둬들인 것이다. 동시에 같은 이유로 일반 백성들의 사랑을 받아 비록 완화집에는 수록하지 않았지만 민간에 전래되어 천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돈황석굴에서 발견되어 전문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一

中和癸卯春三月(중화계묘춘삼월)

중화 계묘년 춘삼월에

洛陽城外花如雪(낙양성외화여설)

낙양성 밖에는 흰 꽃이 백설처럼 만발했다.

東西南北路人絕(동서남북로인절)

사방팔방 어디에도 행인은 끊겼는데

綠楊悄悄香尘灭(녹량초초향진멸)

푸른 버드나무 향기 어느덧 흙먼지에 사라지니

路旁忽見如花人(로방홀견여화인)

꽃이 변한 듯 갑자기 길가에 사람이 나타났다.

獨向綠楊陰下歇(독향록양음하헐)

홀로 푸른 버드나무 그늘 아래 쉬고 있는데

鳳側鸞欹髩脚斜(봉즉란의빈각사)

아, 봉황새인가 란새인가 살쩍이 늘어졌네

紅攢翠斂眉心折(홍찬취렴미심절)

붉은 연지 검은 눈썹 이마에는 수심이 가득

借問女郎何處來(차문여랑하처래)

처자는 어디서 오는 길이오? 물으니

含顰欲語聲先咽(함빈욕어성선인)

찡그리며 말하려는데 목이 먼저 메이네

回頭斂袂謝行人(회두렴몌사행인)

고개를 돌리고 소매를 여며 인사를 하는데

喪亂漂淪何堪說(상란표륜하감설)

난리 통의 윤락한 신세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三年陷賊留秦地(삼년함적유진지)

3년 동안 적도에 빠져 진(秦) 땅에 있었으니

依稀記得秦中事(의희기득진중사)

그 동안 있었던 일을 희미하게나마 기억합니다.

君能爲妾解征鞍(군능위첩해정안)

선비님께서 첩을 위해 말안장을 푸신다면

妾亦與君停玉趾(첩역여군정옥지)

첩 역시 선비님을 위해 발길을 멈추겠습니다

첫 번째 단락으로 16구다. 서사의 대상이 되는 사건이 일어난 시점과 장소를 노래하고 있다. 때는 당희종(唐僖宗) 중화(中和) 3년(883년) 계묘(癸卯)년 봄이고 장소는 지금의 하남성 낙양성 밖 교외다. 시절은 봄이라 예년처럼 꽃이 만개한 화창한 날이었으나 사방팔방 길에는 지나가는 행인 한 명도 없어 흙먼지도 일어나지 않고 적막했다. 그때 홀연히 버드나무 아래에 한 여인이 앉아서 다리를 풀고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두발은 쑥대머리처럼 산발이고 살쩌귀는 정갈하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데 마치 비탄에 잠긴 모습이었다. 시인이 처자에게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고 물었다. 처자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여 오열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고 난 후에 머리를 시인에게 돌려 말했다. “ 나는 병란을 만나 유망 중에 있는 사람입니다. 장안성에 3년을 갇혀있었습니다. 지금 그때의 정황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만일 선비께서 듣고 싶으시면 저를 위해 말안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시려고 한다면 제가 그 동안 겪었던 일을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광명(廣明) 원년(880년) 12월에 장안에 입성한 황소는 제제(齊帝)라고 자칭했다. 당희종은 창황 중에 장안을 탈출하여 성도로 도망쳤다. 중화 3년 3월 이극용(李克用)이 황소의 군대를 격파하고 장안을 수복했다. 시 중에 처자가 장안에 붙잡혀 3년을 머물렀다는 이야기로 황소가 패주한 직후 장안성을 빠져나와 동쪽으로 길을 떠나 유랑하다가 낙양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위장이 본인이 바로 황소의 군대가 점령한 장안에 3년을 갇혀 있었다는 이야기다. 처자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는 위장 본인의 경험을 말한다.

二

前年庚子臘月五(전년경자렵월오)

전해 경자년 섣달 초닷새 날에는

正閉金籠教鸚鵡(정폐금롱교앵무)

황금 새장을 닫고 앵무새에게 말을 가르쳤습니다.

斜開鸞鏡懶梳頭(사개란경뢰소두)

란새 무늬 거울을 비스듬히 놓고 머리빗질조차 게을리 했고

閑憑雕欄慵不語(한빙조란용불어)

조각한 란간에 기대보아도 귀찮아서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忽看門外起紅塵(홀간문외기홍진)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문 밖에서 붉은 먼지 일더니

已中街中擂金鼓(이중가중뢰금고)

대로에는 이미 쟁이와 북 소리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居人走出半倉皇(거인주출반창황)

주민들은 모두 뛰어나갔으나 태반은 허둥지둥하는 사이

朝士歸來尚疑誤(조사귀래상의오)

관원들도 돌아와서 뭣인가 잘못되었다고 의심했읍니다.

是時西面官軍入(시시서면관군입)

그때 서쪽에서 관군이 몰려오더니

擬向潼關爲警急(의향동관위경급)

동관으로 나아가는 척하며 사태가 급함을 알렸습니다.

皆

言博野自相持①(개언박야자상지)

모두들 박야군이 버텨내리라고 말했고

盡道賊軍來未及(진도적군래미급)

누구나 적도가 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須臾主父乘奔至(수수주보승분지)

잠시 후에 집안 어른이 말을 타고 달려 와서

下馬入門癡似醉(하마입문응사취)

말에서 내려서는 집안으로 들어와서 술 취한 모습으로

適逢紫蓋去蒙塵(적봉자개거몽진)

마침내 황제께서는 몽진을 나가시고

已見白旗來匝地(이견백기래잡지)

적도의 백기가 온 땅을 덮었다고 하셨습니다.

①博野(박야)/ 지금의 하북 려현(蠡縣) 일대에 있었던 당말 번진(藩鎭) 중의 하나로 당시 절도사 이무정(李茂貞) 휘하의 군사를 징한다.

　　 두 번째 문단 모두 16구로 광명(廣明) 원년 12월 5일 황소의 농민군이 장안성에 진입할 때의 정황을 노래했다. 시인은 처자를 장안성의 한 귀인 집 시녀로 상정했다. 그날 아침 그녀는 거울과 화장대를 열고 머리빗질을 게을리 하며 조각한 란간에 홀로 기대어 앵무새에게 말을 가르치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대문 밖에서 먼지가 일더니 대로에는 사람들이 북을 치는 모습을 보았다. 주민들이 황망하게 문밖으로 나가 무슨 일인가 알아본 바 조정의 관원들이 모두 회가하며 그들도 들은 이야기가 확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때 성의 서쪽을 경비했던 관군은 성을 나가면서 동관으로 진군하여 수비를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와 동시에 소식이 전해지기를 박야군(博野軍)이 이미 적도를 격파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황도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주인이 말을 타고 달려왔는데 마치 술 취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주인이 말하기를 “ 황제는 이미 달아나 성을 빠져 나갔고 백기를 든 적도는 온 들판을 가득 메우고 성을 향해 진군해 오고 있다.”고 했다.

三

扶羸攜幼競相呼(부리휴유경상호)

노인은 부축하고 아이는 손을 잡고 다투어 외치니

上屋緣牆不知次(상옥연장부지차)

지붕과 담장에 오르는데 차례가 없었습니다.

南鄰走入北鄰藏(남린주입북린장)

남쪽의 이웃은 달아나 북쪽의 이웃집에 숨고

東鄰走向西鄰避(동린주향서린피)

동쪽의 이웃은 달아나 서쪽의 이웃집으로 피했습니다.

北鄰諸婦鹹相湊①(불린제부함상주)

북쪽 이웃의 아낙네들이 서로 모여들었고

戶外崩騰如走獸(호외붕등여주수)

문 밖에 날뛰는 적도들은 달리는 짐승과 같았습니다.

轟轟崑崑乾坤動(굉굉곤곤건곤동)

쿵쾅거리는 수레소리와 발소리에 소리에 천지가 진동하고

萬馬雷聲從地湧(만마뇌성종지용)

만마의 말발굽소리가 벼락 치듯 땅에서 솟아올랐습니다.

火迸金星上九天(화병금성상구천)

불꽃은 금성에 튀어 구천에 이른 듯 하고

十二官街煙烘烔(십이관가연홍동)

열 두 거리의 관가는 불길과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日輪兩下寒光白(일륜양하한광백)

해는 지고 차가운 달빛은 희게 빛날 때

上帝無言空脈脈(항제무언공맥맥)

하느님은 말없이 그저 내려다 볼 뿐이었습니다.

陰雲暈氣若重圍(음훈휘기약중위)

음산한 구름과 달무리는 마치 여러 겹 포위한 듯 했고

宦者流星如血色②(환자유성여혈색)

환자성은 마치 붉은 피 빛이었습니다.

紫氣漸隨帝座移(자기점수제좌이)

보라빛 기운은 점차 황제의 자리를 엄습했고

妖光暗射臺星拆(요광암사대성척)

요사스런 광채가 몰래 비추니 삼대성이 흩어졌습니다.

①相湊(상주)：서로 모이다.

②宦者星(환자성) : 환자(宦者)는 환관의 별자리로 네게가 있음으로 환자사성이라고 한다. 제좌(帝座) 바로 옆에서 네 개의 별이 보호하는 듯한 형태를 띠고 있다.

세 번째 단락으로 16구다. 황소의 농민군이 장안에 입성하는 모습을 그렸다. 전반부 8구는 장안성의 황당하고 혼란스러운 모습과 백성들은 모두 이름을 불러가며 서쪽으로 동쪽으로 달아나 몸을 피하는 모습을 그렸다. 집안은 혼란에 빠지고 집밖에는 병마가 군마들이 이리저리 질주했다. 후반부의 8구는 황성 내에서 불이 나고 밤에 일어난 재난을 밝히고 있다. 장안의 황성에는 남북으로 7개 동서로 5개로 모두 12개의 거리는 모두 정부 각 부서의 관청과 창고가 있는 곳이다. 황제별자리 좌우에 있는 4개의 별로 이루어진 환자성에 빗대어 황제를 끼고 도망친 내관들을 말하고 있다. 하늘에 한 가닥의 자색 기운이 있는 곳이 제좌(帝座)인데, 황제가 거처를 바꾸니 자색 기운도 함께 옮겼다. 대성(臺星)은 삼대성(三臺星)을 말하는데 모두 6개의 별로써 삼공(三公)을 뜻한다. 적도의 요사스러운 기운이 범해 삼대성의 빛이 흐트러졌다함은 조정의 관원들이 흩어져 달아났음을 뜻한다.

四

家家流血如泉沸(가가유혈여천비)

집집마다 피가 흘러 샘이 솟아오르는 듯하고

處處冤聲聲動地(처처원성성동지)

곳곳마다 원성이 일어나 땅을 요동시켰습니다.

舞妓歌姬盡暗捐(무기가희진암연)①

무희와 가희도 모두 남모르게 버림을 받았고

嬰兒稚女皆生棄(영아치녀개생기)

어린 아들 딸 모두 산 채로 버려졌습니다.

東鄰有女眉新畫(동린유녀미신화)

동쪽 이웃집의 딸 갓 결혼했는데

傾國傾城不知價(경국경성부지가)

경국 경성의 아름다움에 가치를 매길 수 없었습니다.

長戈擁得上戎車(장과옹득상융거)

긴 창에 몰려 병거에 오를 때

回首香閨淚盈帊(회수향규루영파)②

고개 들어 신혼방을 바라보며 흘린 눈물 손수건에 가득했습니다.

旋抽金線學縫旗(선추금선학봉기)

별안간 금실을 뽑아 깃발에 수놓기를 배우고

才上雕鞍教走馬(재상조안교주마)

안장에 오르자마자 말타기를 배웠습니다.

有時馬上見良人(유시마상견랑인)

때때로 말 위에서 옛 낭군을 만나게 되면

不敢回眸空淚下(불감회모공루하)

감히 눈길도 주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西鄰有女真仙子(서린유녀진선자)

서쪽 이웃집의 처녀는 정말로 선녀와 같았습니다.

一寸横波剪秋水(일촌횡파전추수)

맑은 눈매는 가을 물을 떠다 담은 듯 했고

妝成只對鏡中看(장성지대경중간)

화장한 후에는 다만 거울 속을 쳐다보기만 했을 뿐

年幼不知門外事(연유부지문외사)

나이가 어려 집 밖의 일을 알지 못했습니다.

一夫跳躍上金階(일부도약상금계)

한 사내가 섬돌을 뛰어 오르더니

斜袒半肩欲相恥(사단반견욕상치)③

어깨를 반 쯤 벗겨 욕을 보이려고 했습니다.

牽衣不肯出朱門(견의불긍출주문)

옷을 잡아당기며 대문 밖으로 나서려고 하지 않자

紅粉香脂刀下死(홍분향지도불사)

홍분과 향지로 화장한 아가씨는 칼 아래 목숨을 잃었습니다.

南鄰有女不記姓(남린유녀불기성)

이름을 모르는 남쪽의 이웃집 처녀는

昨日良媒新納聘(작일양매신납빙)

전날에 중매인을 통해 신랑측의 예물을 받았답니다.

琉璃阶上不闻行(유리계상불문행)

유리 섬돌도 밟았다는 소문 들은 적 없고

翡翠簾間空見影(비취렴곤공견영)

비취 그림 주렴 사이에 그림자만 보이더니

忽看庭際刀刃鳴(홀간정제도인명)

갑자기 정원의 뜰에서 들리는 칼날 소리와 함께

身首支離在俄頃(신수지리재아경)

순식간에 몸과 머리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仰天掩面哭一聲(앙천엄면곡일성)

하늘을 우러러 얼굴을 가린 채 대성통곡을 하던

女弟女兄同入井(여제여형동입정)

동생 언니는 함께 우물로 뛰어들었습니다.

北鄰少婦行相促(불린소부행상촉)

북쪽 이웃의 새댁, 집 떠나기를 재촉받자

旋解雲鬟拭眉綠(선해운빈식미록)④

재빨리 구름같은 쪽진머리 풀고 눈썹의 화장을 지웠으나

已聞擊托壞高門(이문격탁회고문)⑤

이미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부셔지더니

不覺攀緣上重屋(불각반연상중옥)

자기도 모르게 기어서 이층으로 올랐습니다.

須臾四面火光來(수수사면화광래)

순식간에 사방에서 불길이 올라

欲下迴梯梯又催(욕하회제제우최)

오히려 내려가려고 사다리를 찾았으나 부러지고 없었습니다.

煙中大叫猶求救(연중대규유구구)

연기 속에서 크게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했으나

梁上懸屍已作灰(양상현시이작회)

들보에 걸린 시체는 이미 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妾身幸得全刀鋸(첩신행득전도거)⑥

제 몸은 다행히 칼과 톱 사이에서 온전할 수 있었지만

不敢踟躇久回顧(불감지저구회고)

주저하며 감히 오랫동안 되돌아볼 틈이 없었습니다.

旋梳蟬鬢逐軍行(선소선빈축군행)

재빨리 매미 날개 같은 귀밑머리 빗고 군인들을 따라서

強展蛾眉出門去(강전아미출문거)

억지로 얼굴을 펴고 집 문을 나섰습니다.

舊裏從茲不得歸(구리종자부득귀)

고향에는 그 후로 돌아갈 수 없었고

六親自此無尋處(육친자차무심처)

가까운 친척도 그 후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①暗捐(암연)：몰래버리다.

②盈把(영파)：파는 한 주먹으로 영파는 한 주먹 가득

③相恥(상치)：치욕 즉 욕을 당하다.

④眉綠(미록)：푸른 색으로 눈썹을 그리다.

⑤擊托(격탁)：문을 두드리다.

⑥全刀鋸(전도거)：칼날과 톱날과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 목숨을 보전함

네 번째 문단으로 42구다. 부녀자들이 전쟁으로 인해 당한 참상을 그렸다. 먼저의 4구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말했는데 집집마다 유혈이 낭자하고, 곳곳마다 원성이 진동했으며, 재녀나 어린 아이들이 버려졌다고 했다. 그 다음 구부터는 주위의 여인들이 당한 재난을 차례로 읊었다. 동쪽의 미녀는 포로가 되어 붙잡혀갔고, 서쪽과 남쪽의 여인은 모두 살해되었으며 북쪽의 이웃집에 살던 어린 신부는 불에 타 죽었다. 마지막 6구는 여주인공 자신의 내력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다행히 목숨을 구하기는 했으나 군인들의 겁박을 받아 감히 거부하지 못하고 단지 머리를 빗질하여 단정한 모습으로 눈웃음을 띠고 그들의 뒤를 따라야만 했다. 그 후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 육친들과는 모두 소식이 끊기게 되었다.

五

一從陷賊經三載(일종함적경삼재)

도적떼에 빠진지 3년이 지났지만

終日驚憂心膽碎(종일경우심담췌)

종일토록 놀라고 걱정스러워 마음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夜臥千重劍戟圍(야와천중검극위)

밤에는 천겹의 칼날과 창날 속에 싸여 자고

朝餐一味人肝膾(조찬일미인간회)

아침밥은 한 가지로 사람의 간을 회쳐 먹었을 뿐입니다.

鴛幃縱入豈成歡(원위종입기성환)

원앙새 휘장이 쳐진 방에 든다한들 어찌 기쁘겠습니까?

寶貨雖多非所愛(보화수다비소애)

보화가 비록 많다한들 좋아할 수 없었습니다.

蓬頭垢面眉猶赤(봉두구면미유적)①

봉두구면에 붉은 눈썹 사내들이

幾轉橫波看不得(기전횡피간부득)

몇 번이고 추파를 던져도 똑바로 볼 수 없었습니다.

衣裳顛倒語言異(의상전도어언이)

웃옷과 아래옷이 뒤바뀌고 언어도 다른데다

面上誇功雕作字(면상과공조작자)

얼굴에는 공을 자랑하는 글자를 새겨 넣었고

柏

台多半是狐精(백태다반시호정)②

어사대의 많은 인사들은 태반이 여우도깨비요

蘭省諸郎皆鬼魅(란성제랑개귀매)③

비서성(秘書省)의 젊은 관리들은 도깨비 귀신들이었습니다.

還將短髮戴華簪(환장단발재화잠)

또 몽당머리에는 꽃비녀를 꽂았고

不脫朝衣纏繡被(불탈조의전수피)

조복은 그대로 입은 채 비단이불 둘러 입고

翻持象笏作三公(반지상홀작삼공)④⑤

상아 홀 뒤집어 들고는 삼공이라고 칭하고

倒佩金魚爲兩史(도패금어위양사)⑥⑦

금어대는 거꾸로 차고 양사라고 칭했습니다.

朝聞奏對入朝堂(조문주대입조당)

아침에 듣기에는 주청하려 조당에 든다했지만

暮見喧呼來酒市(모견훤호래주시)

저녁에는 떠들면서 술집에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①眉猶赤(미유적)：서한 말 번숭(樊崇)이 왕망(王莽) 정권에 반하여 기병할 때 휘하의 군사들에게 눈썹을 붉은 색으로 칠하게 해서 당시 사람달은 그들을 적미적(赤眉賊)이라고 불렀다.

②柏台(백대)：어사대로 어사대부가 집무하는 관청.

③蘭省(란성)：비서성(秘書省) 혹은 란대(蘭台)、란성(蘭省)으로 칭했다. 교서랑(校書郎) 등의 랑관이 근무하던 것.

④象笏(상홀)：관리들이 조회에 나갈 때 지참하던 홀로 상아로 만든 것.

⑤三公(삼공)：대사마(大司馬)、대사도(大司徒)、대사공(大司空).

⑥金魚(금어)：삼품 이상의 관원들이 허리에 차고 다녔던 금색의 물고기 모양의 허리 띠.

⑦兩史(양사)：백대(柏台)와 란성(蘭省)을 합쳐 양사라 했다. 어사대부와 어사중승을 말한다.

　　 강제로 황소부하에게 시집간 여인이 새로 귀족이 된 황소군의 생활을 보고 서술했다. 처음 6구는 황소군과 생활한 자신의 생활을 기술했다. 황소군의 군중에 떨어진 이후 3년이 지났으나 종일토록 놀라고 걱정스러워 마음은 산산조각 났다고 했다. 밤에는 천 겹의 칼날과 창날 속에 싸여서 자고 아침밥은 한 가지로 사람의 간을 회쳐 먹었다. 비록 황소의 군인들과 같이 잠을 잤지만 무슨 즐거움이 있었겠는가? 금은보화가 비록 적지 않았지만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봉두구면에 붉은 눈썹 사내들이 몇 번이고 추파를 던져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다음 5운 10구는 조정의 문관 자리를 차지한 황소군의 모습을 그렸다. 의상은 단정하지 못하고 모두 외지의 사투리로 그들이 세운 공을 얼굴에 글자를 뜨고 문신을 했다. 백대와 란성의 관들은 모두 여우새끼나 도깨비귀신들뿐이었다. 두발은 모두 단발머리에 두상에는 비녀를 꽂고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다가 조복은 벗지도 않고 그대로 입은 채 비단이불을 허리에 두르고 다녔다. 삼공(三公)이라는 위인들은 상아 홀 뒤집어 들고 금어대는 거꾸로 차고 양사라고 칭했다. 아침에 듣기에는 주청하려 조당에 든다했지만 저녁에는 떠들면서 술집으로 향했다.

六

一朝五鼓人驚起(일조오고인경기)

어느 날 아침 새벽에 사람들 소리에 놀라 일어나니

叫嘯喧爭如竊議(규소선쟁여절의)

소리치며 다투는 모습이 몰래 모의하는 것 같았습니다.

夜來探馬入皇城(야래탐마입황성)

저녁 때 탐마가 황성에 들어와

昨日官軍收赤水(작일관군수적수)

어제 관군이 적수(赤水)를 점령했다고 고했다고 했습니다.

赤水去城一百里(적수거성일백리)

적수는 황성에서 일백 리 떨어진 곳이라

朝若來兮暮應至(조약래혜모응지)

아침에 출발하면 저녁 때 당도할 수 있으니

凶徒馬上暗吞聲(흉도마상암탄성)

흉악한 도적들은 곧바로 소리를 죽이고

女伴閨中潛色喜여반규중잠색희)

규중의 여인들은 마음속으로 기쁜 기색이었습니다.

皆言冤憤此時銷(개언원분차시소)

모두들 원통하고 분한 마음 이제야 풀린다하고

必謂妖徒今日死(필위요도금일사)

필시 요사스러운 무리들 오늘에야 죽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逡巡走馬傳聲急(준순주마전성급)

주저하는 사이에 탐마가 달려와 소리쳐 소식을 전하는데

又道官軍全陣入(우도관군전진입)

다시 말하기를 관군이 모두 입성했다고 했습니다.

大彭小彭相顧憂(대팽소팽상고우)①

대팽과 소팽이 서로 바라보며 걱정하고

二郎四郎抱鞍泣(이랑사랑포안읍)②

황소와 황규 형제는 안장을 만지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泛泛數日無消息(범범수일무소식)

그렇게 소식 없이 며칠이 지나가자

必謂軍前已銜璧(필위군전이함벽)③

필시 적도는 관군 앞에 이미 항복했으리라 생각했는데

簸旗掉劍却來歸(파기토검각래귀)

깃발을 휘날리고 검을 휘두르며 돌아와서는

又道官軍悉敗績(우도관군흘패적)

다시 말하기를 관군은 모두 패주했다고 했습니다.

①大彭(대팽)은 시박(時溥)이고 小彭(소팽)은 진언(秦彥)으로 모두 팽성 출신이다.

②二郎(이랑)은 즉 황소이고 四郎(사랑)은 황소의 동생 황규(黃揆)다.

③銜璧(함벽)：싸움에 지고 투항하는 측의 왕이나 제후가 상대편에게 벽을 입에 물고 죄를 청하는 의식이다.

여섯 번째 　단락은 모두 18구로 장안 성내의 백성들이 관군과 황소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의 진행사항을 알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난 성내의 백성들은 크게 외치는 소리를 듣고 다시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어 비밀스러운 말을 나누었다. 어제 밤 탐마가 황성으로 달려와 관군이 이미 적수진(赤水鎭)을 수복했다고 보고했다. 적수진은 장안의 서쪽 위남현(渭南縣) 동쪽에 있는 군진으로 장안에서 100여리 밖에 안 되는 지척의 고을이다. 그 소식을 듣고 적도들은 모두 의기소침되어 소리를 죽였으나 그들에 의해 포로가 된 부녀자들은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에서야 비로소 적도들이 죽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그 동안 품어왔던 원한과 울분을 풀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탐마가 달려와 전쟁터의 소식을 전하기를 관군의 대군이 이미 황성에 진입했다고 했다. 그때 황소의 부하였던 대팽과 소팽은 매우 두려워했고 황소와 그의 형제들은 말을 타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 상태로 며칠 동안 아무 소식이 없자 사람들은 황소가 이미 관군에 투항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황소와 그의 부하들은 깃발을 바람에 날리고 칼을 휘두르며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다시 황성으로 돌아오리란 것을! 그들은 관군과 싸움에서 크게 이겼다고 말했다.

역사적인 사실은 이렇다. 중화 2년 2월 경원대장(涇原大將) 당홍부(唐弘夫)가 황소의 부장 임언(林言)을 흥평(興平)에서 크게 무찌르고 동시에 왕처존(王處存)이 2만의 군사를 이끌고 황도에 입성하여 백성들의 환영을 받았다. 황소는 성밖으로 도망쳤으나 기율이 무너진 왕처존의 군사들의 부녀자들을 강간하고 살육했다. 패상으로 도망쳐 사태의 추이를 살펴보던 황소가 다시 돌아와 반격을 가하자 뿔뿔이 흩어진 왕처존의 군대는 성안의 청장년들에게 모두 살해되었다. 이렇게 해서 황성은 다시 황소에게 점령되었다.

七　　

四面從茲多厄束(사면종자다위속)

사방에는 이때부터 재액과 구속이 많아져서

一鬥黃金一鬥粟(일투황금일투속)

황금 한 말에 곡식 한 말이었습니다.

尚讓廚中食木皮(상양주중식목피)①

상양은 부엌에서 나무껍질을 벗겨 먹고

黃巢機上刲人肉(황소기상규인육)

황소는 기계 위에서 사람고기 베어 먹었습니다.

東南斷絕無糧道(동남단절무량도)

동남쪽의 길이 끊겨 양도가 막히고

溝壑漸平人漸少(구학점평인점소)

도랑과 골짜기는 사람의 시체로 평평해지고

사람도 점차 적어졌습니다.

六軍門外倚僵屍(육군문외의강시)②

육군 원문 밖에는 강시만 널려있고

七架營中填餓殍(칠가영중전아표)③

칠가정(七架亭) 병영에는 굶어죽은 시체가 즐비했습니다.

長安寂寂今何有(장안적적금하유)

장안은 적막하게 되어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고

廢市荒街麥苗秀(폐시황가맥묘수)

시정과 가로는 황폐해져 보리이삭이 돋았습니다.

采樵砍盡杏園花(채초감진행원화)

땔나무 쓰려고 행원의 꽃나무 모두 찍어버리고

修寨誅殘御溝柳(수채주잔어구류)

성채를 쌓으려고 수채의 버드나무 베어버렸습니다.

華軒繡縠皆銷散(화헌수곡개소산)

비단으로 장식한 화려한 수레 모두 흩어지고

甲第朱門無一半(갑제주문무일반)

훌륭한 집 붉은 대문 태반이 사라졌습니다.

含元殿上狐兔行(함원전상호토행)

함원전 위에는 여우와 토끼가 나돌아 다니고

花萼樓前荊棘滿(화악루전형극만)

화악루 앞에는 가시덤불 우거졌습니다.

昔時繁盛皆埋沒(석시번성개매몰)

옛날 번성했던 곳은 모두 파 묻혔고

舉目淒涼無故物(거목처량무고물)

눈을 들면 처량한 모습뿐 남아있는 옛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內庫燒爲錦繡灰(내고호위금수회)④

궁중의 창고는 불에 타서 비단재로 변했고

天街踏盡公卿骨(천가답진공경골)⑤

황도의 거리에 밟히는 것이라고는 공경의 해골뿐이었습니다.

①尚讓(상양)：황소군의 재상이다.

②六軍(육군)：황제의 군대를 육군이라고 하고 또한 좌우의 우림군(羽林軍), 용무군(龍武軍)，및 신책군(神策軍)을 합쳐 육군이라고도 한다. 모두 수도를 보위하는 금군이다.

③七架(칠가)：장안지(長安志)에 금원(禁苑)에 칠가정(七架亭)이 있는데 궁성에서 13리 떨어져 있다는 기사가 있다.

④內庫(내고)：내장고(內藏庫)의 준말로 당태종이 황궁 안에 건설한 창고로 후에 황제의 개인적인 재물이나 기물을 보관했던 창고로 사용했다.

⑤天街(천가)：황궁 내에 난 도로

일곱 번째　단락으로 모두 20구다. 장안성을 탈환하기 위해 출동한 관군이 황소군과의 싸움에서 패퇴한 이야기다. 관군이 비록 싸움에서 지고 장안성 안으로 진입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성을 사면에서 포위하고 성민이 먹어야할 양식의 공급을 끊었다. 성중의 곡가가 폭등하고 먹을 것이 없어 황건군의 재상 상양은 나무껍질을 먹고 황소는 인육으로 식사했다. 백성들은 하나하나 굶어 죽어나가 도랑과 구덩이를 메우고 무덤은 많아지고 사람은 점점 사라져갔다. 번창했던 장안성 거리는 적막하게 변해 주인 없는 거리가 되고 팔가구시(八街九市)는 보리이삭만 돋아나고 있다. 행원(杏園)의 꽃과 나무는 이미 사람들에 의해 베어져 땔감으로 없어지고 해자의 양쪽 제방에 심어졌던 버드나무는 성채를 세우려는 관군에 의해 찍어져 나갔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저택, 비단 휘장으로 치장한 수레는 모두 사라지고 부호들과 귀인들이 살던 붉은 대문이 달린 웅장한 저택은 모두 파괴되었다. 황궁 안의 함원전(含元殿)、화악루(花萼樓)의 터에는 이미 가시나무가 우거지고 여우와 산토끼가 노닐었다. 옛날 번성했던 황도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옛날의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황궁의 창고에 저장되었던 진귀한 보물과 비단들은 모두 타서 한 줌의 재로 변했고 발에 밟히는 것이라고는 공경들의 해골뿐이었다.

八

來時曉出城東陌(래시요출성동맥)

황성의 동쪽 길을 돌아 이곳으로 왔는데

城外風煙如塞色(성외풍연여색색)

성밖의 바람과 연기는 마치 변경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路

旁時見遊奕軍①(로방시견유혁군)

길가에는 때때로 유혁군의 모습이 보였지만

坡下寂無迎送客(파하적무영송객)

언덕 아래는 적막하여 영송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霸陵東望人煙絕(패릉동망인연절)

패릉에서 동쪽을 쳐다보니 인적조차 끊기었고

樹鎖驪山金翠滅(수쇄려산금취멸)

나무는 여전히 여산을 둘렀으나 금빛 궁전은 사라졌습니다.

大道俱成棘子林(대도구성극자림)

큰길은 모두 가시나무 숲을 이루었고

行人夜宿牆匡月(행인야숙장광월)

행인들은 담장도 없는 집에서 달빛 아래 야숙합니다.

①游奕軍(유혁군) : 당조 중기 이후 병력이 증가되고 관할구역이 넓어진 지방주둔군을 순시하며 방어사의 일을 맡도록 설치한 관직이다. 肅宗(숙종) 건원(乾元) 원년(759）곽자의(郭子仪)가 영무절도사 한유환을 유혁사로 임명하여 5백 기의 기병을 이끌고 하양을 달려가 지키도록 했다. 또 소종昭宗 광화光化 원년(898) 마은马殷을 이경李琼과 진언휘秦彦晖가 장악하고 있던 영북岭北 7 개주를 관할하는 유혁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유혁군은 당대의 지방에 분산되어 있던 병력을 효과적으로 지휘하기 위한 일종의 군사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여덟 번째 문단 8구는 여인이 장인을 탈출한 이후 길을 가다가 들은 소문을 이야기했다. “ 아침 일찍 동문을 빠져나왔는데 성밖의 풍경은 마치 황량한 변경과 같았습니다. 도로 위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순라를 도는 군인들뿐이고 언덕 아래에는 태평한 때에 전송하고 영접하던 사람들로 북적대던 모습은 사라지고 인적이 끊겨 적막하기만 했다. 동쪽의 패릉(覇陵) 쪽 역시 인적이 끊겼다. 여산 위에는 여전히 수목이 무성했지만 황금빛 찬란한 궁궐의 누각은 불타서 보이지 않았다. 옛날 거마가 북적대던 대로는 이미 가시나무만 우거지고 길옆의 여인숙이나 상적은 모두 사라지고 늦은 밤의 행인들은 담장도 없는 곳에서 노숙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