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균(温庭筠)
당헌종(唐憲宗) 원화(元和) 7년인 서기 812년에 태어나서 당의종(唐懿宗) 함통(咸通)11년인 서기 870년에 죽은 만당(晩唐) 시인이다. 자는 비경(飛卿)이고 본명은 기(岐)다. 지금의 산서성 태원(太原)인 병주(幷州) 출생으로 문재가 뛰어나 과거시험장에서 8번 팔짱을 끼고 8운시(韻詩)를 완성하여 온팔차(溫八叉)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평소에 행실이 올바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급제하지 못했다. 염시(艶詩)를 많이 지었으며, 당시의 이상은(李商隱)과 함께 ‘온이(溫李)’라고 병칭되었다. 사(詞)의 작가로도 유명하고, 특히 악부(樂府)에 뛰어나 화려한 표현으로 스러져가는 6조 문화에 대한 동경과 석춘(惜春)의 정 등을 노래하였다. 당나라 해체시기의 시정을 가장 잘 대표하는, 따뜻하고 색채가 넘치는 관능적 세계를 만들어냈다. 또 유행가요였던 ‘사(詞)’를 서정시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데에도 많은 공적을 남겼다. 저서로 《온비경시집》(7권) 《건손자》 《채다록(採茶錄)》이 있다.
其一
妾家白蘋浦(첩가백빈포)
첩의 집은 흰개구리밥꽃 피는 포구
日上芙蓉楫(일상부용집)
날마다 연꽃이 만발한 강물에 배를 띄우지요.
軋軋搖槳聲(알알요장성)
삐걱거리는 노젓는 소리
移舟入茭葉(이주입교엽)
배는 흘러 당귀풀 속으로 들어갑니다.
其二
溪長茭葉深(계장교염심)
길게 뻗은 개울물에 무성하게 자란 당귀풀
作底難相尋(작저난상심)
밑바닥을 가늠하기 너무 어려워요.
避郞郞不見(피낭랑불견)
도련님을 피하니 도련님 보이지 않고
鸂䳵自不沉(계칙자불침)
비오리만 홀로 두둥실 떠있네요.
其三
拾萍萍無根(습평평무근)
주워 든 부평초는 뿌리가 없는데
采蓮蓮有子(채연련유자)
연꽃을 따니 연밥이 달려있네요.
不作浮萍生(부작부평생)
정처 없이 떠다니는 부평초로 사느니
寧作藕花死(영작우화사)
차라리 연밥을 맺은 연꽃이 되겠어요.
其四
岸傍騎馬郎(안방기마랑)
언덕 위에 말 타고 나타난 멋쟁이 도련님
烏帽紫遊韁(오모자유강)
검은 비단 모자에 늘어진 보라색 고삐 잡고
含愁復含笑(함수복함소)
근심을 머금은 듯, 미소를 머금은 듯
回首問橫塘(회수문횡당)
고개를 돌리더니 횡당가는 길을 묻네요.
其五
妾住金陵步(첩주금릉보)
첩은 금릉보 포구에 사는데
門前朱雀航(문전주작항)
문 앞의 주작교 밑으로 배가 다녔고
流蘇持作帳(유소지작장)
오색 술을 엮어 휘장을 만들고
芙蓉持作梁(부용지작량)
부용을 꺾어 대들보를 만들었지요.
其六
出入金犢幰(출입금독헌)
송아지가 끄는 금색 덮개 수레를 타고 출입하는
兄弟侍中郎(형제시중랑)
형제들은 시중랑이고요
前年學歌舞(전년학가무)
작년에는 노래와 춤을 배워
定得郎相許(정득랑상허)
낭군님의 마음을 얻을 정도가 되었답니다.
其七
連娟眉繞山(연연미요산)
가늘고 긴 눈썹은 휘감은 산 모양이고
依約腰如杵(의약요여오)
간들거리는 허리는 절구통 같지요.
鳳管悲若咽(봉관비약열)
봉황을 장식한 피리를 불면 흐느끼는 듯이 슬프고
鸞弦嬌欲語(란현교욕어)
난새 장식 거문고 타면 속삭이듯 감미로웠어요.
其八
扇薄露紅鉛(선박로홍여
얇은 부채 너머로 분 바른 얼굴 내밀고
羅輕壓金縷(나경압금루)
가벼운 비단을 눌러 금실 수를 놓았지요.
明月西南樓(명월서남루)
밝은 달은 서남 쪽의 누각 위로 떠오르면
珠簾玳瑁鉤(주렴대모구)
주렴을 걷고 대모로 만든 갈고리에 걸었어요.
其九
橫波巧能笑(횡파교능소)
곁눈질하며 예쁘게 웃음 지을뿐
彎蛾不識愁(만아불식수)
동그랗고 가는 눈썹 시름을 알지 못했지요.
花開子留樹(화개자유수)
꽃은 피어서 나무에 씨앗을 남기고
草長根依土(초장근의토)
풀은 자라도 뿌리는 흙 속에 있답니다.
其十
早聞金溝遠(조문금구원)
일찍이 금구는 멀다고 들었는데
底事歸郎許(저사귀랑허)
무슨 일로 그대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나요?
不學楊白花(불학양백화)
슬픈 양백화 노래는 배우지 않겠어요.
朝朝淚如雨(조조루여우)
아침마다 눈물을 비 오듯이 흐를테니까요.
『끝』
『당재자전(唐才子傳)』
온정균(溫庭筠)의 자는 비경(飛卿)이며 원래 이름은 온기(溫岐)다. 병주(幷州) 사람으로 당태종 때 재상을 지낸 온언박(溫彦博)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뛰어난 재능이 있어 한 번 붓을 들면 능히 수만 자를 써냈다. 또한 거문고와 피리의 연주에도 뛰어난 그가 말했다.
「줄이 있으면 연주하고 구멍이 있으면 불면 되지 하필이면 꼭 찬동(爨桐)이나 가정(柯亭)의 대나무로 만든 것이어야 한단 말인가?」
찬동(爨桐)은 후한 때 거문고의 명수 채옹(蔡邕)이 오동나무로 불을 떼다가 불타는 소리가 대단함을 듣고 그 나무로 거문고를 만들어 이름을 초미금(焦尾琴)이라고 붙였다는 고사이고, 가정(柯亭)은 채옹이 회계(會稽)의 가정(柯亭)을 지나가다가 16개의 연죽(椽竹)을 보고 이를 적(笛)으로 만들었다는 일화다.
그의 시는 측사염곡(側詞艶曲) 즉 가볍고 아름다운 문사를 추구하는 시풍으로 당시 이상은(李商隱)과 함께 온리(溫李)라고 불리웠다. 매번 시험에 관운(官韻)을 압운(押韻)할 때면 등불 아래서 초고를 쓴 적이 없고, 단지 팔장을 끼고 손은 소매 속에 넣은 채 책상에 기대어 한 운 씩 읊은 다음 완성 시켰다. 과장의 그의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를 온팔음(溫八吟)이라고 불렀다. 그리 고 또 팔을 팔(八)자로 엇갈리며 여덟 개의 운을 완성했다고 해서 온팔차(溫八叉)라고도 불렀다. 함께 참가한 다른 수험생을 위해 가수(假手) 즉 대리시험도 많이 봐주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경박하고 자신을 추스르는 면이 부족하였으며 당시 귀족 자제인 배성(裵誠), 영호호(令狐滈) 등과 어울리며 술과 도박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영위했다. 그 뒤 그는 한 때 밤에 술이 취한 채 기생 골목을 드나들며 소란을 피우다가 나졸에게 걸려 이가 부러지게 혼이 나기도 했다. 관아에 소송을 했지만 결국 이기지 못했다. 그는 진사시헝에 응시, 여러 차례 실패했다. 그렇지만 재상 영호도(令狐綯)의 서재를 드나들며 아주 큰 대접을 받기도 했다. 당시 당선종(唐宣宗)은 《보살만(菩薩蠻)》이라는 노래를 즐겨 불렀다. 영호도가 온정균에게 새로운 가사를 짓도록 하여 선종에게 바치면서 온정균에게 그 사실을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온정균은 곧바로 그 사실을 떠들고 다녔다. 한번은 영호도가 《옥조탈(玉條脫)》의 전고(典故)를 묻자 온정균은 《남화경(南華經)》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대답하면서 말했다.
「이는 편벽된 글도 아니고 상식인데도 상공께서 모르고 계시다니, 나라를 다스리는 틈을 내어 옛 책들도 좀 보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는 다시 빈정댔다.
「학문이 높아야 할 중서성 안에 글과는 거리가 있는 장군을 앉혀 놓았군!」
이후로 영호도는 점점 멀리하고 말았다. 이에 온정균은 자신의 경솔했던 행동을 후회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구를 읊었다. 렇게까지 하면서 영호도의 무식을 조롱하자 했다.
因知此恨人多積(인지차한인다적)
이런 원망을 남에게 자꾸 쌓아주고는
悔讀南華第二篇(회독남화제이편)
후회하면서《남화진경》제이편을 읽고 있네.
양양절도사(襄陽絶度使)로 부임해 온 서상(徐商)이란 사람이 온정균을 불러 순관(巡官)으로 삼았지만 곧바로 그만 두고 다시 강동(江東)을 떠돌았다. 선종(宣宗) 대중(大中 : 847-860) 말년 과거 실험관이 된 산북(山北) 출신의 시랑(侍郞) 심순(沈詢)은 온정균이 시험의 답안을 남에게 일러줄까 염려해서 그를 불러 주렴 아래에서 시험을 치도록 했다. 이를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한 온정균은 해가 질 무렵 자신은 먼저 시험을 끝냈으니 나가겠다고 하면서 제출한 답안에는 1천여 자의 글이 쓰여있었다.
2022-12-16 2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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