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회시(詠懷詩) VII(61-­70)


六十一
少年學擊劍(소년학격검)
소년 시절 격검술을 배워

妙伎過曲城(묘기과곡성)
솜씨는 곡성후를 능가했고

英風截雲霓(영풍절운예)
영웅적인 풍모는 하늘을 찔러

超世發奇聲(초세발기성)
명성은 세상 너머로 떨쳤다.

揮劍臨沙漠(휘검임사막)
칼 휘두루면서 사막으로 나아가

飲馬九野坰(음마구야경)
구주 아득한 들판에서 말에 물 먹였고

旗幟何翩翩(기치하편편)
깃발을 훨훨 휘날리면서

但聞金鼓鳴(단문금고명)
오직 징소리 북소리만 들었다.

軍旅令人悲(군려영인비)
종군은 사람을 슬프게 만들어

烈烈有哀情(열렬유애정)
애절한 감정만 맹렬하게 남기니

念我平常時(염아평상시)
내 젊은 시절을 돌이켜보면

悔恨從此生(회한종차생)
뉘우침과 한스러움 절로 생긴다.

◇ 곡성후(曲城侯) : 곡성은 지금의 산동성 동래(東萊)다. 창과 칼을 잘 써서 명성을 날렸던 장중(張仲)의 봉읍이다.

시인은 의기와 총질로 왕성했던 옛 시절을 회상했다. 무예를 배우던 소년 시절, 변방으로 출정했던 젊은 시절,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남은 건 전쟁의 슬픈 상처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조국이 멸망 직전에 있으니, 조국을 위해 바친 젊은 날의 기상과 열정, 그 전쟁의 여파로 생긴 슬픈 상처 등이 오히려 후회스럽고 한스러울 뿐이다.


六十二
平晝整衣冠(평주정의관)
의관을 한낮에 정제한 것은

思見客與賓(사견객여빈)
손님과 빈객을 맞이할 생각 때문이고

賓客者誰子(빈객자수자)
손님과 빈객이 누구냐 하면

倐忽若飛塵(숙홀약비진)
한 순간에 날아다니는 먼지같은 사람이다.

裳衣佩雲氣(의상패운기)
옷은 구름 기운 가득하고

言語究靈神(언어구영신)
언어는 신령스러운 사람

須臾相背棄(수수상배기)
순식간에 날 버리고 가버리면

何時見斯人(하시견사인)
언제 그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해서다.

시인은 줄곧 신선에 대한 생각뿐이다. 티끌처럼 구름 속을 떠다니며 그 기운을 고스란히 웃에다 담고 신령스러운 말까지 스스럼없이 내뱉는 신선이야말로 시인이 진정 갈망하는 대상이었다. 정신적인 만남에 들떠 있으면서 동시에 이별의 아쉬움까지 염두에 두었으니, 신선을 희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쉽게 알 수 있다. 어떤 비평가는 혜강(嵇康)을 지칭했다고 주장한다.


六十三
多慮令志散(다려영지산)
지나친 우려는 심지를 해치고

寂寞使心憂(적막사심우)
적막은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翱翔觀陂澤(편편관피택)
높이 비상하여 연못을 살펴보고

撫劍登輕舟(무검등경주)
허리에 찬 검을 만지작 거리며 작은 배에 오른다.

但願長閑暇(단원장한가)
한가롭기만을 바랄 뿐이니

後歲複來遊(후세복래유)
내년에 다시 와 즐기리라!


시인은 늘 우려와 적막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신선이 되어 하늘로 날아올라 물가를 바라보다가, 때로는 패검을 쥐고 가볍고 날쌘 배에 올라 유람을 즐기고자 했다. 남은 생애를 한가롭게 유유자적하기만을 바라는 시인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앴다.


六十四
朝出上東門(조출상동문)
아침에 상동문으로 나와서

遙望首陽基(요망수양기)
저 멀리 수양산 자락을 바라본다.

松柏鬱森沉(송백울상침)
소나무 잣나무 숲 울창하고

鸝黃相與嬉(이황상여희)
꾀꼬리는 서로 화답한다.

逍遙九曲間(소요구곡간)
구곡 사이를 소요하면서

徘徊欲何之(배회욕하지)
배회하다 어디로 가야하나?

念我平居時(염아평거시)
평소 한가하던 때 생각하니

鬱然思妖姬(울연사요희)
울컥 아름다운 여인 그리워진다.


수양산은 백이, 숙제가 충절을 중이 여겨 굶어 죽은 곳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그곳은 소나무 잣나무 숲이 울창하고 새들은 서로를 희롱하며 날아다니는 듯 보인다. 급이진 개울가를 소요하며 생각에 잠긴 시인은 마땅히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여유로웠던 평상시를 생각하니 울컥하는 마음에 아름다운 여인이 생각났다. 생뚱맞게 튀어 나온 ‘아름다운 여인’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수양산이 등장하니 아름다운 여인은 곧 달기(妲己)라는 설이 있고 위의 시구 ‘평소 한가하던 때 생각하니[念我平居時]’와 어울리지 않으니 아예 그가 쓴 구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六十五
王子十五年(왕자십오년)
왕자교는 15살 때

遊衍伊洛濱(유연이락빈)
이수와 낙수 강변에서 만껏 노닐었다.

朱顏茂春華(주안무춘화)
붉은 얼굴에는 봄날같은 화사함 가득하고

辯慧懷清真(변혜회청진)
유창한 언변과 청순한 마음을 가슴에 품었다.

焉見浮丘公(언견부구공)
어쩌다 부구공을 만나

舉手謝時人(거수사시인)
손들어 세속인들과 작별하고는

輕蕩易恍惚(경탕역황홀)
멀리거 가볍게 날며 황홀경에 빠져

飄颻棄其身(표요기기신)
둥실둥실 떠다니며 육신 버렸다.

飛飛鳴且翔(비비명차상)
훨훨 날며 울다가 비상하다가

揮翼且酸辛(휘익차산신)
날개 흔들지만 슬프고 고통스러울 뿐.


왕자교는 열다섯 살 때 태자의 신분으로 조정을 보좌하며 부왕인 주영왕(周靈王)으로부터 신임을 얻었고, 진평공(晉平公)이 보낸 사광(師曠)과의 문답으로 그의 총명함을 드러냈다. 얼마 있지 치수 문제로 부왕의 미움을 사서 서민으로 전락해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이때 자신은 3년 뒤에 죽을 운명이라고 예언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자, 사람들은 그에게 신선의 칭호를 붙여 주었다. 왕자교를 통해 자신의 심정을 밝힌 시다. 시의 내용은 신선이 되기를 갈망하는 여타 유선시(遊仙詩)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마지막 ‘산신(酸辛)’이라는 두 글자를 반전을 기했다. 즉 자신의 고단한 삶고 현실에 대한 깊은 우려를 하늘을 날면서도 마음속에서 버리지 못했다. 그만큼 시인의 고통이 깊었기 때문이었다.

六十六
塞門不可出(새문불가출)
변경의 관새를 나갈 수도 없고

海水焉可浮(해수언가부)
바다로 나아가 떠다닐 수도 없다.

朱明不相見(주명불상견)
붉은 태양이 보이지 않으니

奄昧獨無侯(엄매독무후)
어두워 좋은 것이라곤 없다.

持瓜思東陵(지과사동릉)
오이 손에 들고 동릉후 생각하니

黃雀誠獨羞(황작성독수)
참새 같아서 정말로 부끄럽다.

失勢在須臾(실세재수유)
권세를 잃은 것은 눈깜빡할 사이인데

帶劍上吾丘(대검상오구)
허리에 칼 차고 언덕 위에 올라

悼彼桑林子(도피상림자)
예상 땅의 영첩을 애도한다.

涕下自交流(체하자교류)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

假乘汧渭間(가승변위간)
견수와 위수 사이에서 수레를 빌려

鞍馬去行遊(안마거행유)
말과 안장을 준비해서 멀리 유람가리라!

◇ 상림자(桑林子) : 춘추시대 예상(翳桑) 땅의 뽕나무 아래에서 굶주렸던 영첩(靈輒)을 말한다. 그때 마침 지방을 순행나온 당진국의 재상 조돈(趙盾)이 먹을 것을 나누어 주어 아사를 면했다. 후에 진영공(晉靈公)에게 살해당하기 직전의 조돈의 목숨을 구해주어 은혜를 갚았다.

굴원은 말을 몰아 북쪽 끝까지 간다고 했고, 공자는 세상에 도가 없으면 배를 타고 바다 위를 떠다닌다고 했따. 하지만 시인은 어느 것 하나 실천할 가 없다. 이 세상은 한 줄기 빛도 없는 칠흑같은 곳이다. 그래서 동릉후(東陵侯) 은사(隱士)가 되고 싶을 뿐 위험도 모른 채 노는 데만 집착하는 참새는 진정 수치스러운 존재로 여겼다. 권력이란 얼마나 뜬 구름 같은 것인지, 한무제가 죽자 얼무 후 그의 능에 병사들이 올라가 칼을 갈며 모욕을 가했다. 한편 조돈을 위해 결초보은을 실천한 영첩(靈輒)같은 사람이 주위에 없으니 눈물만 나올 뿐이다. 그래서 수레 몰고 견수와 위수 사이를 다니다, 때가 되면 멀리 말을 타고 유람을 떠나고자 했다.


六十七
洪生資制度(홍생자제도)
이름 난 유생은 제도에 따라

被服正有常(피복정유상)
의복의 차림새도 법이 있다네

尊卑設次序(존비설차서)
높고 낮음의 차례를 정해놓고

事物齊紀綱(사물제기강)
일일이 기강에 맞춰야한다.

容飾整顏色(용식정안색)
얼굴색을 정연히 하고나서

磬折執圭璋(경절집규장)
허리굽혀 조배 드리고 규장(圭璋)을 든다.

堂上置玄酒(당상치현주)
당상에는 현주를 놓아두고

室中盛稻粱(실중성도량)
실내에는 벼와 기장 가득 채웠다.

外厲貞素談(외려정소담)
밖으로는 도고하고 정다운 듯

戶內滅芬芳(호내멸분방)
집 안에선 꽃 향기 볼 수 없구나.

放口從衷出(방구종충출)
기탄없이 하는 말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고

複說道義方(복설도의방)
도의를 반복하며 점잔 부린다.

委曲周旋儀(위곡주선의)
굽실거리고 돌아서는 위의를 차리는 모습

姿態愁我腸(자태수아장)
그 자태 내 비위 거슬리고 역겨웁다.



◇ 규장(圭璋) : 규와 장으로 옥으로 만든 제기다. 매우 진귄한 물건으로 ‘고상한 품행과 덕성’을 비유했다.

유가를 신봉하는 자들은 여러 제도와 규율 등을 만들어 일상생활을 적용한다. 그래서 도덕을 실천하고 법도를 준두한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그렇지 않다. 밖에서는 고상하고 준엄한 말만 늘어좋지만 사실은 올바른 덕행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속에 있는 말을 마음껏 지껄이다가도 금방 도덕과 의리를 들먹이니, 도덕을 가장한 그들의 위선적인 행동거지와 자태는 실로 시인을 슬프게 했다.


六十八
北臨幹昧溪(북림간매계)
북쪽 건매산 골짜기 내려다보면

西行遊少任(서행유소임)
서쪽 소임(少任)으로 유람간다.

遙顧望天津(요고망천진)
고개 들어 멀리 은하수 바라보니

駘蕩樂我心(태탕락아심)
마음 격앙되어 기쁨이 치솟는다.

綺靡存亡門(기미존망문)
번화한 곳이 생사가 달린 문이라

一遊不再尋(일유부재심)
한번 유람한 뒤 다시 찾지 않는다.

儻遇晨風鳥(당우신풍조)
우연히 신풍조 만난다면

飛駕出南林(비가출남림)
수레 부려 재빨리 남쪽 숲으로 날아가

漭瀁滛光中(망양제광중)
빛이 충만한 우주의 한 가운데를 배회하며

忽忽肆荒淫(홀홀사황음)
황음을 홀홀이 불사르리라!

休息晏清都(휴식안청도)
천제의 도읍에서 편히 쉬며

超世又誰禁(초세우수금)
세상 초월하니 누가 다시 막으리오.


◇ 건매(乾昧) : 《산해경(山海經)·동산경(東山經)》에 나오는 전설상의 산 이름이다. 동방에 있는 네 번째 계열 산맥의 총칭으로 북호산(北號山)부터 시작해서 태산(太山)에 이르는 모두 8개의 산으로 그 거리는 1720리다.
◊ 소임(少任) : 지명으로 보이나 미상이다.
◊ 천진(天津) : 기(箕)와 두(斗) 별자리 사이로 은하에 가로 놓인 천진구성(天津九星)을 말한다.
◊ 신풍조(晨風鳥) : 송골매로 ‘북림(北林)의 삭조(朔鳥)’를 말한다. 사마씨의 권력에 붙은 위나라의 신하들을 비유했다.


이 편은 동평(東平)을 떠나 수도인 낙양으로 가면서 느낀 소회를 적은 시다. 시인은 처음에는 유람이라는 생각에 북쪽 건매산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 때로는 은하수를 올려다보며 마음이 유쾌했다. 하지만 낙양에 다가갈수록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번화하고 사치스러운 낙양은 곧 생사존망이 달려 있는 위험천한한 곳으로 다시는 찾을 만한 곳이 되지 못한다고 여겼다. 혹시라도 사마씨에 귀의한 위나라 조신(朝臣)이라도 만날까봐 더더욱 피하려고 했다. 그래서 남쪽으로 날아가 속세를 초월하여 황음을 불사르며 인생의 고통가 슬픔을 잊으려고 했다.


六十九
人知結交易(인지결교역)
교분 맺은 건 쉽지만

交友誠獨難(교우성독난)
친구로 사귀기에는 어렵다.

險路多疑惑(험로다의혹)
험한 행로에 숱한 의혹 받으니

明珠未可幹(명주미가간)
명주도 어찌할 수 없구나!

彼求饗太牢(피구향태뢰)
그대들은 큰 잔치 바라지만

我欲幷一餐(아욕병일찬)
난 하루 한 끼면 족하다.

損益生怨毒(손익생원독)
손익으로 인해 원한 생기니

咄咄複何言(줄줄복하언)
아아, 무슨 말 다시 하랴!


◊ 명주(明珠) : ‘귀중한 보물을 어둠 속에서 던진다’는 뜻의 명주암투(明珠闇投)에서 나온 말이다. ‘어떤 귀한 구슬도 도리에 벗어난 방법으로 주면 원망을 산다.’는 의미다. 재능은 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 쓰는 비유다.


예나 지금이나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란 쉽지 않다. 자신이 재능을 발휘하면 알아주기는커녕 오히려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낸다. 사람들은 호의호식을 원하지만, 시인 자신은 신체적 욕구가 아니라 진정한 우애를 바란다. 하지만 시대가 암울하여 이해관계로 인해 서로 원한만 생기니 시인은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안세를 살아온 시인이라 지음(知音)이 더 절실했는지 모른다.



七十
有悲則有情(유비칙유정)
슬픔이 일면 슬픈 감정 생기고

無悲亦無思(무비역무사)
슬픔이 없으면 생각도 없어진다.

苟非嬰綱罟(구비영강고)
진실로 둘러친 그물에 걸리지 않으면

何必萬裏畿(하필만리기)
어찌 반드시 만 리나 되는 땅이 필요할까?

翔風拂重宵(상풍불중소)
회오리바람 무거운 하늘로 치솟고

慶雲招所晞(경운초소희)
상서로운 구름 햇빛에 말리어진다.

炭心寄枯宅(탄심기고택)
재같이 차워진 마음 흉가에 사니

曷顧人間姿(갈고인간자)
어찌 사람의 참 모습 돌아보겠으며

始得忘我難(시득망아난)
이제야 자신을 잊기 어려움을 알았으니

焉知黙自遺(언지묵자유)
어찌 말없이 스스로 버릴 줄을 알 수 있을까?

시인은 줄곧 도가적 태도를 취한다. 슬픔마저 사라진 것은 감정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정치 상황은 시인에게 빙 둘러쳐진 그물과 같아 무슨 방법을 취하던지 간에 그것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리하여 상서로운 바람, 오색구름이 창연한 옛집에 살면서 욕심 없는 마음으로 속세 이탈을 꿈꾸며 망아(忘我)의 경지에 도달하길 기원했다. 혹자는 상풍(翔風)과 경운(慶雲)을 사마씨 주위에 맴도는 권신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