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pg) .jpg)
도망시(悼亡詩三首)
척과(擲果)의 주인공 반악(潘岳)
1. 반악의 일생
외출할 때마다 수레에 과일을 한 가득 싣고 왔다는 ‘척과영거(擲果盈車)’의 주인공이자 천하 제1미남 반악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반악은 흔히 반안(潘安)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서진(西晉) 시대 하남 출신으로 용모가 출중했을 뿐만 아니라 성품도 좋았다. 어릴 적부터 뛰어난 문장으로 ‘기동(奇童)’이란 소리를 들었다. 스무 살 무렵 진무제(晉武帝) 사마염(司馬炎)에게 올린 찬양의 글이 최고로 꼽혀 다른 신하들의 질투를 사는 통에 조정에서 쫓겨났다.
이 후 반악은 10년 가까이 실의의 나날을 보내다 마침내 관리로 기용되어 하양현의 현령 등을 지내면서 상당한 실적을 쌓았다. 하양현 현령 때는 현에다 복숭아나무를 두루 심었는데 당시 사람들이 ‘하양현의 꽃’이라 불렀다. 반악은 20년 가까이 이 지방 저 지방에서 벼슬을 살다가 50세 무렵인 296년에는 낙양으로 돌아와 54세로 생을 마감했다.
2. 반악의 순탄치 못했던 삶
가는 곳마다 열혈 여성팬들을 몰고 다녔던 얼짱 오빠 반악의 삶은 그 외모와는 달리 전혀 순탄치 않았다. 미인박명(美人薄命) 이란 말이 있듯이 미남의 삶도 기구한 모양이다. 그런데 미남자 반악은 일반인들의 예상과는 달리 애정에 관한 한 대단히 보수적이고 순수했다. 그렇게 많은 여성 팬들을 몰고 다녔지만 정작 그 자신은 담담했다. 그리고 아내에 대한 애정은 말 그대로 지극정성이었다.
그의 아내는 반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명문 집안 출신이었다. 집안을 극히 중시했던 당시 풍토로 보자면 반악에게는 이런 집안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반악의 아내가 반악의 미모와 재능에 반해 자진해서 반악에게 시집을 온 것이다. 반악은 이런 아내를 극진히 아꼈다. 살아서는 물론 아내가 먼저 세상을 뜬 뒤에도 변치 않는 애정을 보였다.
52세 때 아내가 세상을 떠난 이듬 해 반악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추모의 시 ‘도망시(悼亡詩)’를 세 편 지었는데, 중국 문학사에서 ‘도망시’의 선구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여성의 지위를 생각할 때 반악의 ‘도망시’ 전에는 죽은 아내를 추모하는 이런 작품은 거의 없었다. 반악의 ‘도망시’는 애모의 마음이 잔뜩 묻어나는 뛰어난 문장력으로 눈길을 끄는데, 이런 점에서 그는 우울한 미남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3.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반악
반악은 외모는 물론 애정에서도 일편단심 한 여인만을 사랑했던 좋은 남자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 역정은 그의 외모처럼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비극적 색채가 농후했다. 마치 그의 ‘도망시’처럼 말이다. 정치 경력도 아주 힘들었다. 뛰어난 재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기용되지 못하다가 뒤늦게 당시 실세였던 황후 가남풍(賈南風)과 그녀의 조카 가밀(賈謐)을 우두머리로 하는 가씨 집단에 몸을 맡겼다. 이때부터 반악은 추잡한 정치판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당시 가황후는 태자를 폐위시키려고 했는데, 불행하게 반악이 이 음모에 걸려들었다. 태자가 술에 취한 틈에 가황후는 반악을 시켜 귀신에게 올리는 문장을 짓게 하고는 태자에게 그 문장을 그대로 베끼게 했다. 반악은 태자가 쓴 문장을 보고는 그의 필체를 흉내 내서 역모의 문장을 썼고, 태자는 결국 폐위되어 생모와 함께 피살되었다. 반악의 붓이 칼로 변한 순간이었다.
반악은 이 음모의 주동자는 아니었지만 그가 맡은 일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8왕의 난이 마무리되어 조왕 사마륜(司馬倫)이 정권을 탈취하자 바로 반악을 잡아들여 처형하고 아울러 삼족을 멸했다. 여기에는 반악이 예전에 사마륜의 친구인 손수(孫秀)에게 밉보인 것도 크게 작용했다.
반악의 일생을 종합해보면, 재능․미모․애정 그리고 정치적 죄악이 한 몸에 농축된 복잡하고 모순된 생명체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훗날 사람들은 그의 미모만을 기억하지만 이는 그를 너무 단순화한 것이다. 수많은 미남자들 중에서 그가 가장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의 미모에 가려진 재능과 순수한 애정의 일단이 불현 듯 고개를 내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출처] [김영수의 중국사 이야기]
반악(潘嶽)
서기 247년에 태어나서 300년에 죽은 서진(西晉)의 문인으로 자는 안인(安仁)이고 형양(滎陽) 중모(中牟) 출신이다. 용모가 수려했고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 기재(奇才)로 이름이 있었다. 그러나 관운은 순탄치 않아서 수재(秀才)가 된지 10년이 되어서야 현령이 되었고 후에 랑(郞), 급사황문(給事黃門)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태부(太傅) 양준(楊俊)에게 의탁하여 주부(主簿)가 되었다가 양준이 가남풍(賈南風)에 의해 살해당하자 함께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후에 가남풍 휘하의 권신 가밀(賈謐)에게 붙어 아부했음으로 후인들은 그를 “성품이 경박하고 세속족인 이익을 쫓았다.”고 비난했다. 이어서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이 가남팡과 가밀을 토벌할 때 반역죄에 연좌되어 멸족당했다.
원래 10권의 문집이 있었다고 했으나 모두 산실되고, 명대에 이르러 《반황문집(潘黃文集)》으로 편찬되었다. 반악은 서진의 문단에서 육기(陸機)와 함께 명성을 얻어 반육(潘陸)으로 병칭되었다. 그의 시는 화려하고 서정을 표현하는데 능했다. 단편적으로 전해졌던 그의 부(賦)는 모두 24편이 현존하는데 《문선(文選)》에 8편이 수록되었다.
其一
“荏苒冬春謝(임염동춘사)
세월은 흘러 겨울과 봄이 지나
寒暑忽流易(한서인유이)
추위와 더위 홀연히 가버렸는데
之子歸窮泉(지자귀궁천)
그 사람은 황천으로 돌아가고
重壤永幽隔(중양영유격)
여러 겹의 흙은 그녀와 나를 영원히 갈라놓았구나!
私懷誰克從(사회수극종)
사사롭게 품은 정은 누가 따를 수 있겠고
淹留亦何益(엄유역하익)
오래 머문 들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마는
僶俛恭朝命(민면공조명)
열심히 조명을 받들고
回心反初役(회심반초역)
마음을 돌려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望廬思其人(망려사기인)
옛 집을 쳐다보면 그 사람 생각난다.
入室想所曆(일실상소력)
방에 들어가면 옛날 일이 그리운 데
幃屏無仿佛(위병무방불)
어렴풋한 그녀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휘장이지만
翰墨有餘跡(한묵유여적)
그래도 남긴 글에는 흔적이 남아있구나!
流芳未及歇(유방미급헐)
맴도는 향기가 아직 다하지 않은 옷가지들
遺掛猶在壁(유괘유재벽)
여전히 벽에 걸려있어
悵恍如或存(창황혹여존)
정신이 혼미해져 아직 살아있는 듯해서
周遑忡驚惕(주황충경척)
허둥대고 다시 놀래다가 슬퍼한다.
如彼翰林鳥(여피한림조)
저 숲속에 날아다니는 새들처럼
雙棲一朝隻(쌍서일조척)
짝지어 살다가 하루아침에 혼자되었듯이
如彼遊川魚(여피유천어)
저 냇가에 노닐던 물고기처럼
比目中路析(비목중로석)
나란히 헤엄치다가 도중에 헤어졌구나!
春風緣隙來(춘풍연극래)
봄바람은 문틈으로 들어오고
晨溜承簷滴(신류승첨적)
새벽 낙수물은 처마 끝에서 방울져 떨어지는데
寢息何時忘(침식하시망)
자나 깨나 언제나 잊으리?
沉憂日盈積(침우일영적)
깊은 슬픔은 날마다 쌓여간다.
庶幾有時衰(서기유시쇠)
바라건대 언제나 슬픔이 잦아들 때가 온다면
莊缶猶可擊(장부유가격)
질장구를 두드리며 노래 불렀던 장자가 되리!
其二
皎皎窓中月(교교창중월)
창문 가운 데의 밝고 밝은 달
照我室南端(조아실남단)
내 방의 남쪽 모서리를 비추고
清商應秋至(청상응추지)
맑은 바람에 응하여 다가온 가을은
溽暑隨節闌(욕서수절란)
습한 무더위는 절기 따라 잦아든다.
凜凜涼風升(늠늠량풍승)
매섭게 춥고 차가운 바람 불어
始覺夏衾單(시각하금단)
비로소 여름 이불 엷음을 느끼게 되고
豈曰無重纊,(기왈무중광)
어찌 두꺼운 솜이불 없겠느냐만
誰與同歲寒(수여동세한)
누구와 겨울을 함께 지낼까?
歲寒無與同(세한무여동)
추운 겨울 함께할 이 없는데
朗月何朧朧(낭월하농롱)
달은 어찌 이리 밝은가?
展轉盻枕席(전전힐침석)
몸을 뒤척여 베게 자리 흘겨보지만
長簟竟牀空(장점경상공)
긴 대자리 침상은 결국 비어있고
牀空委清塵(상공위청진)
침상은 비어 가벼운 먼지 쌓일 뿐
室虛來悲風(실허래비풍)
방은 비어 슬프고 처량한 바람 스며든다.
獨無李氏靈(독무이씨령)
다만 이씨의 혼령은 없고
仿佛睹爾容(방불도이용)
마치 그대의 얼굴 보이는 듯하여
撫衿長歎息(무금장탄식)
옷깃을 부여잡고 길게 탄식할 뿐
不覺涕霑胸(불각체점흉)
눈물이 가슴을 적심을 느끼지 못하지만
霑胸安能已(점흉안능이)
가슴을 적시니 어찌 멈출 수 있을까?
悲懷從中起(비회종중기)
가슴속으로부터 일어나는 슬픈 마음
寢興目存形(침흥목존형)
잠에서 깨면 눈앞에 모습 존재하는 듯
遺音猶在耳(유음유재이)
목소리 여전히 귓가에 들리는 듯
上慚東門吳(상참동문오)
위로는 양나라 동문오(東門吳)와
下愧蒙莊子(하괴몽장자)
아래로는 송나라 몽읍(蒙邑)의 장자가 부끄럽다.
賦詩欲言志(부시욕언지)
시를 지어 감회를 말하려하나
此志難具紀(차지난구기)
그 감회 갖추어 기술하기 어렵다.
命也可奈何(명야가나하)
운명이니 어찌할 수가 없구나
長戚自令鄙(장척자령비)
오랜 슬픔이 나를 비루하게 만들뿐!
其三
曜靈運天機(요령운천기)
해는 하늘의 이치에 따라 운행하여
四節代遷逝(사절대천서).
사계절이 바뀌어 지나가니
淒淒朝露凝(처처조로응)
차가운 가을날 아침 이슬은 맺히고
烈烈夕風厲(열렬석풍려)
매서운 엄동 저녁 바람이 사납다.
奈何悼淑儷(나하도숙려)
어쩔거나 아름다운 배필 애도하지만
儀容永潛翳(의용영잠예)
그대의 거동과 용모가 영원히 사라졌으니
念此如昨日(염차여작일)
세상을 떠난 때를 떠올리니 마치 어제 같은데
誰知已卒歲(수지이졸세)
이미 죽어 1년이 된 줄을 누가 알까?
改服從朝政(개복종조정)
옷을 갈아입고 조정에 나가지만
哀心寄私制(애심기사제)
슬픈 마음은 따로 사가(私家)의 의례에 따르고
茵幬張故房(인주장고방)
침상의 기물과 휘장은 옛 방에 펼쳐두어
朔望臨爾祭(삭망임이제).
초하루와 보름이 되면 그대를 제사지내리!
爾祭詎幾時(이제거기시)
당신의 제사가 벌써 몇 번째인가?
朔望忽復盡(삭망홀부진)
초하루와 보름이 훌쩍 지나갔다네.
衾裳一毀撤(금상일훼철)
이불이나 치마는 한번 치워버리면
千載不復引(천재불부인)
천년토록 다시 가져올 수 없다네.
亹亹期月周(미미기월주)
시간이 흘러 일주기가 다가오니
戚戚彌相湣(척척미상민)
애달픈 가슴 더욱 미어진다.
悲懷感物來(비회감물래)
옛 물건 보노라니 마음 슬퍼지고
泣涕應情隕(읍제응정운)
마음 따라 눈물방울 떨어진다.
駕言陟東阜(가언척동부)
수레 타고 동쪽 언덕에 올라
望墳思紆軫(망분사우진)
무덤 바라보니 그리움은 가슴에 응어리지고
徘徊墟墓間(배회허묘간)
무덤가를 배회하다가
欲去復不忍(욕거부부인)
떠나고자하나 다시 차마 떠나지 못한다.
徘徊不忍去(배회불인거)
배회하며 차마 떠나지 못하고
徙倚步踟躕(사의보지주)
계속 머무르다 발걸음 오락가락 서성인다.
落葉委埏側(낙엽위연측)
낙엽은 묘길 옆에 쌓여가고
枯荄帶墳隅(고해대분우)
마른 풀뿌리는 무덤가를 둘렀네.
孤魂獨煢煢(고혼독경경)
고독한 영혼 홀로 외롭지만
安知靈與無(안지영여무)
어찌 함께 할 영혼이 없음을 알겠는가?
投心遵朝命(투심준조명)
마음을 바쳐 조정의 명을 따르려
揮涕強就車(휘제강취거)
눈물을 훔치며 억지로 수레로 향하게 한다.
誰謂帝宮遠(수위제궁원)
누가 임금께서 계신 궁궐이 멀다 말했던가?
路極悲有餘(노극비유여)
길은 다하여도 슬픔은 남아 있는데!
끝
|
|
2020-01-25 22:48:22
1044
24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