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죽지사(朝鮮竹枝詞)


서진(徐振)은 18세기 중엽 강희제(康熙帝 : 재위 1654-1722년) 재위 연간에 자신의 임무를 띠고 조선에 왔다는 사실만 밝혀졌을 뿐 그가 어떤 벼슬을 하고 정확히 몇 년도에 왔는지는 미상이다. 자는 백미(白眉)이고 호는 사촌(沙邨), 강소성 화정(華亭) 출신이다. 강희 44년 서기 1705년에 향시에 응시하여 거인(擧人)이 되었다는 기록만이 전한다.《산휘당시집(山輝堂詩集)》과 《조선죽지사》가 실려있는《예해 주진(藝海珠塵)》등의 작품집이 있다. ,


조선에 사신으로 오면서 견문한 것을 「조선죽지사(朝鮮竹枝詞)」 40수에 담았고 작품의 내용과 관련된 사항을 주(註)를 통해 상세히 밝혔다. 압록강을 건너는 장면에서 시작되어, 조선의 역사와 조선에 머물면서 목격한 풍속과 민간 생활상을 상세하게 기록했으며, 조선의 유명한 시인으로 백광훈(白光勳)과 권필(權韠), 월산대군(月山大君)을 언급했다. 서진의 「조선죽지사」 40수는 뒤이어 조선에 사신 왔던 백준의 「조선죽지사」 30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서진의 죽지사에는 조선에 대한 전통적인 중국인의 인식이 담겨 있다. 당대 조선이 예악과 풍류로 다스려지는 태평성대라 했는데, 그 이면에는 중국의 교화가 있었다는 논지이다. 서진은 인삼 등 조선의 토산물과 백광훈, 권필, 월산대군 등의 조선 인물을 작품에 담으면서, 조선의 토속어를 그대로 음역하여 시어로 활용했으며 권필에 대해서는 그의 삶의 행적까지 서술했다.
다음으로 서진의 죽지사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조선의 당대 풍속 관련 작품들이다. 혼인의 풍습이나 쌍륙놀이, 사신 영접의 장면을 묘사한 작품에 대해서 김윤식(金允植)은 반론을 제기한 바 있다. 이는 서진의 개인적인 선입견과 중국의 조선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이 서진의 「조선죽지사」에 반영된 것에 대한 반론으로, 중국에 와전된 조선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김윤식이 꼼꼼이 변증한 것이다. 서진의 작품에 보이는 조선의 풍속에 대한 논의는 서진만의 개인적인 인식이 아니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서진의 죽지사에 보이는 조선 인식은 중국인의 전통적인 조선 인식과 연결되어 있고 서진 역시 그 전통을 그대로 이은 것이다. 비록 당대 실제적인 풍속을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중국인의 조선 인식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임은 분명하다. [박종훈 ( Chong Hoon Park )온지논총 29권]


其一
鴨綠江春水似油(압록강춘수사유)
압록강에 봄이 와 강물은 기름처럼 윤택이 흐르고

畫船旗仗漾中流(화선기장양중류)
화려한 배는 깃발 날리며 강 가운데 출렁인다.

開船打鼓橫江去(개선타고횡강거)
북소리 울리며 선창을 떠나 강을 가로질러 나아가는데

隔岸炊煙是義州(격안최연시의주)
강 건너 밥 짓는 연기 피어오르는 곳이 신의주다.

※압록강은 곧 조선과의 경계이고 의주는 조선국의 서쪽 끝에서 가장 큰 고을이다. [鴨綠江卽朝鮮境 義州其西鄙首郡也]



其二
衛滿東奔殷祀遷(위만동분은사천)
위만이 동쪽으로 달아났고 기자도 은나라 제사를 옮겼으며

句麗部落溷朝鮮(구려부락혼조선)
고구려의 부락이 조선과 엇섞여 살다가

王孫空說鮮于氏(왕손공설선우씨)
임금의 자손들은 공연히 선우라고 성을 바꾸었으니

麥秀荒城年復年(백수황성연부년)
보리 이삭 무성한 황폐한 성은 흘러간 세월만을 느끼게 한다.

※ 한서에 연인 위만이 도망하여 조선으로 들어가 조선왕 준(準)을 쫓아내어 바닷로 도망가게 만들고 스스로 조선왕이 되었다. 한무제(漢武帝) 원봉(元鳳) 4년, 서기 107년에 조선을 정벌하여 위만의 손자 우거왕(右渠王)을 죽이고 그 땅을 나누어 낙랑(樂浪), 현도(玄菟) 등의 사군을 설치했다. 후에 고구려과 몰래 점거하고는 그 전대의 나라 이름 그대로 불렀다. 지금은 비록 여러 번 왕조가 바뀌었지만 아직도 그들의 후손들이 살고 있지만 쇠약해져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없다. [漢書, 燕人衛滿, 亡命入朝鮮, 逐朝鮮王準走海中, 自立爲王, 漢武元封四年, 伐之, 殺其孫右渠, 分其地爲樂浪元菟等四郡, 後爲高句麗竊據, 仍襲故號, 今雖數易姓, 尙其遺流, 箕子之後, 更姓鮮虞, 猶有存子 燕寢衰, 無聞人矣]
※ 맥수황성(麥秀荒城) : 보리이삭이 무성한 황폐한 성. 사마천의 《사기(史記)·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 은나라의 충신 기자(箕子)가 은나라의 옛 도성을 지나가다가 보니 성은 무너져 폐허가 되었는데 보리와 기장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기자는 가슴이 아파서 눈물을 억누르고 《맥수(麥秀)》라는 시를 지어 황폐한 은허의 모습을 보고 슬퍼했다. ※ 원토(原土)는 현토(玄菟)의 현자(玄字)를 강희제의 이름 현엽(玄燁)을 휘(諱)했다.



其三
平壤城西箕子墳(평양성서기자분)
평양성 서쪽 기자의 묘에는

欹斜石馬臥寒雲(의사석마와한운)
기울어진 석마가 찬 구름 아래 누워있다.

蠻兒不管興亡恨(만아불관흥망한)
오랑캐 아이들 흥망의 한을 모른 채

猶指殘碑說故君(유지잔비설고군)
깨진 비석 손가락질 하면서 옛날 임금 것이라고 떠든다.

※ 평양성의 서쪽 산에 기자의 묘가 있다.[平壤城西山有箕子墓]



其四
大同江上水連天(대동강상수련천)
대동강 물은 드넓어 하늘과 맞닿아 있고

江畔人耕水稻田(강반인경수도전)
강변의 사람들은 볏논을 갈고 있다.

囉嗊聲長官舫過(나홍성장관방과)
여기여차 소리 크게 내며 관선이 지나가자

進鮮齊集打魚船(진선제집타어선)
생선 바치려고 고기잡이 배들이 일제히 몰려든다.

※ 이곳에서 산출되는 쌀은 가장 품질이 좋아 중국에서 진귀하게 여기고 있다. 대동강은 평양성의 남쪽을 흐르고 있는데 맛있는 물고기들이 많이 난다. [土産穀米最良, 爲中國所珍, 大同江在平壤城南, 多佳魚]


其五
簫鼓樓船綺席張(소고루선기석장)
퉁소 불고 북치는 누선에는 비단 방석 깔려있는데

兩行齊出柘枝裝(양행제출자지장)
자지무 춤옷 차림 춤꾼들이 두 줄로 지어 정연히 나오는데

舞迴似索纏頭錦(무회사색전두금)
비단 천을 머리에 동여매고 새끼줄 꼬듯 돌면서 춤추고

跪進新羅酒一觴(궤진신라주일상)
무릎 꿇고 신라 술을 따라 한잔 바친다.


其六
綵幄連雲障國門(채악연운장국문)
채색비단 장막 구름에 잇닿을 듯이 쳐서 나라문도 가려져 있고

千官烏帽若雲屯(천관오모약운둔)
수많은 관원들 검은 모자 쓰고 구름처럼 모였다.

龍旗前導人聲靜(용기전도인성정)
용깃발 따라가는 사람들 소리 없이 조용하니

方信天朝使者尊촌(방신천조사자촌)
천조국 사자 존귀함을 이제야 알겠다.

※ 채색비단 장막을 좌우로 성을 덮을 정도로 쳐놓고 손님을 맞이하는데 대체로 감히 사신들을 성 아래까지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綵幄覆城左右以延客人, 蓋不敢使出城下也]
※ 자지장(柘枝裝) : 자지무(柘枝舞)를 추는 춤복을 입은 사람들. ‘자지(柘枝)’는 당나라 궁전의 음악부서인 교방(敎坊)에 쓰던 악곡 이름이다. 유우석(劉禹錫)의 《관무자지(觀舞柘枝) - 자지무를 관람하고 -》와 진양(陳暘)의 《악서(樂書)》 등에도 자지무가 보인다. 《고려사·악지(樂志)》의 《당악정재(唐樂呈才)와》와 조선초기의 《악학궤범》권 5의 《시용향약정재(時用鄕樂呈才)》에는 연화대(蓮花臺)가 보이는데, 청대의 《흠정사보(欽定詞譜)》에 보이는 자지무의 설명 내용과 거의 같다.


其七
漫天羅帳護花裀(만천라장호화인)
온 세상 뒤덮은 비단 장막엔 화려한 깔개 깔려있고

十丈鰲山百戲陳(십장오산백회진)
열길 높이 오산에선 온갖 놀이가 펼쳐진다.

無數妖姬窗低立(무수요회창저립)
수많은 아리따운 여인들이 창가에 서서

玉纖偸指看唐人(옥섬투지간당인)
가냘픈 손으로 몰래 손가직하며 중국사람 구경한다.

※ 오산(鰲山) :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산 이름이다. 오(鰲)는 큰 자라다. 바닷속의 큰 자라가 신선들이 살고 있는 섬 다섯 개를 등에 지고 있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其八
建明門外列戈矛(건명문외열과모)
건명문 밖에는 창 든 사람이 줄지어 서있고

擊鼓吹簫不肯休(격고취소불긍휴)
북소리 퉁소소리 멈출줄 모르고

國主罷朝東鄕立(국주파조동향립)
임금은 조회를 끝내고 동쪽 향해 서있고

詔書高供殿前頭(조서고공전전두)
황제의 조서는 높다란 궁전 앞머리에 모신다.

※통사관이 조서를 가지고 조선왕이 있는 곳으로 가면 왕은 북쪽을 향해 예를 차리고 나서야 비로소 칙사와 손님을 대하는 예를 행하여 접견식을 행한다. [通事官齋詔至王所, 王北向舞蹈畢, 方與勅使以賓客禮見]
※ 건명문(建明門) : 왕이 정사를 처리하는 곳으로 경희궁(慶喜宮)의 정전인 숭정전(崇政殿)의 동남쪽에 있었던 궁문이다.


其九
靑龍鳳扇國王來(청룡봉선국왕래)
청룡깃발 봉황부채 아래 조선임금 오시는데

鐵網圍車不暫開(철망위거불잠개)
철망으로 둘러싼 수레의 호위는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卻與使臣分席坐(각여사신분석좌)
그래도 사신들과는 자리르 함께하고 앉으니

聖朝恩渥自無猜(성조은악자무시)
천조국의 은혜를 입고 있음를 스스로 의심치 않는다.


其十
華筵賓主笑顔看(화연빈주소안간)
화려한 잔치에 손님과 주인은 웃는 얼굴로 마주바라보고

玉箸雕盤勸擧餐(옥저조반권거찬)
옥젓가락 아름다운 쟁반 음식 들어 권한다.

各致殷勤渾不解(각치은근혼불해)
각기 은근한 정 전하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兩邊忙煞大通官(양변망쇄대통관)
양쪽 통역관들 바빠서 정신 못 차린다.

※통사사인을 대통관이라고 한다. [通事舍人曰大通官]


其十一
畫戟朱幡逐隊開(화극주버눅대개)
화려한 장식와 창과 붉은 깃발 든 사람 등장하고

花紋鼉鼓打如雷(화문타고타여뢰)
꽃무늬의 악어가죽 북 천둥처럼 울린다.

一時從吏齊低首(일종리제저수)
일제히 따르던 관리들 모두 고개 숙이니

丞相親陪中使來(승상친배중사래)
승상이 직접 모신 중국 사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신을 가장 존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승상 이하 모든 관원들이 공경을 다하여 예를 차리는 것이다. [中使最尊, 丞相以下皆敬禮之]


其十二
南別宮中鋪設精(남별궁중표설정)
남별궁 안의 길은 정성들여 장식을 하고

彩華席展浪紋平(채화석전랑문평)
화려한 채색방석의 물결무늬는 평평하다.

上房不許纖塵涴(상방불허섬진완)
상국의 사자를 모시는 방은 먼지하나 없이 깨끗하고

素襪紅衣別監迎(소말흥의별감영)
흰 버선 붉은 옷 입은 별감이 마중한다

※ 방석의 꽃무늬는 다섯 가지 색조이었다. 나라의 서남 모퉁이에 숭례문이 있고, 그 문으로 들어가 3리 되는 곳에 남별궁이 있는데 칙사에게 제공되는 거처로 규정되어 있다. 왕의 호위병은 별감이라 하고, 모두 붉은 옷을 입고 있으며 사신들에게 보내 수발하도록 했다. 그들은 반드시 신을 벗고 방에 들어왔다. [席花五彩, 國西南隅曰崇禮之門, 入門三里許曰南別宮, 例以供勅使居, 王之護衛曰別監, 皆衣紅, 遺供驅使, 必脫履而進]


其十三
官伎歌臺近驛亭(관기가대근역정)
관기들이 노래하는 무대는 역사 가까운 곳에 있으나

陪臣深夜醉伶聘(배신심야취령빙)
배석한 신하들은 밤 늦도록 즐겁지 않는 마음에 취했다

怪他錦瑟重門隔(괴타금슬중문격)
이상하게도 아름다운 악기 소리 겹문으로 막아놓아

不許中原過客聽(불허중원과객청)
중원에서 온 손님들이 듣지 못하게 한다.

※역사 주변에는 어디에나 공연장을 마련해 놓아 중국에서 온 사신들을 위해 공연한다. 규정에 사신을 시중하는 사람들은 함부로 역사의 문을 나가지 못한다고 되어있다. [郵亭左右都置句欄, 供本國往來使令者 定制, 奉使員役, 不得擅出驛門]




其十四
山腰高阜結官廳(산요고부결관청)
산허리와 높은 언덕에 관청을 지어

面面松杉入座靑(면면송삼입좌청)
사방의 소나무와 삼나무 방안까지 푸르게 우거졌다.

瘦石幽花靑淺水(수석유화청천수)
맑고 얕은 물에 우뚝 솟은 바위와 그윽하게 피는 꽃은

納淸亭與快哉亭(납청정여괴재정)
정주의 납청정과 평양의 쾌재정이란 곳에 있었다.

※ 납청정은 정주에 있고 쾌재정은 평양에 있는데 모두 동국의 명승지라고 했다. [納淸亭在定州, 快哉亭在平壤, 謂東國勝地]



其十五
王京一帶跨街樓(왕경일대과가루)
서울 일대는 누각이 길 사이를 두고 서있는데

樓上春纖捲玉鉤(누상춘섬권옥구)
누각 위의 고운 손이 옥고리고 휘장을 말아 올린다.

捉囚半推紅隔者(착수반추홍격자)
좁은 소매로 반쯤 칸막이를 밀다가는

怕人回覰却低頭(파인회처각저두)
사람들이 쳐다볼까봐 재빨리 고개를 숙인다.


其十六
十八蠻娘玉作膚(십팔만랑옥작부)
옥같은 피부의 아름다운 18세의 조선 소녀

珊瑚釵綴詰多珠(산호채철힐다주)
산호 비녀에는 주렁주렁 많은 구슬 달았다.

小襟新截葡萄錦(소금진절포도금)
옷섶은 새 포도무늬 비단으로 마름했으니

一幅漢宮春曉圖(일폭한궁춘효도)
한 폭의 한나라 궁전의 봄 궁녀 그림 같구나!


其十七
城外春山翠黛長(성외춘산취대장)
성 밖의 봄산처럼 논썹 길게 화장한 여인이 있고

誰家年少紫羅囊(수가년소자나낭)
어느 집 젊은이인지 자주 비단주머니 차고 있다.

小鬟低喚鬘奴衛(소환저환만노위)
계집아이가 낮은 목소리로 ‘맏누이’를 부르며

波峭無如伊薩郞(파초무여이살랑)
멋지기로는 ‘이 사람’ 같은 이가 없다고 한다.

※ 봄날에 남녀가 산에 올라 노는데 다투어 뒤쫓아 다니며 장난을 치고, 서로 좋아하게 되면 바로 결혼한다. 언니를 맏누이[鬘奴衛(만누위)]라 부르고 이(伊)는 이것이 뜻이고, 살랑(薩郞)은 사람의 뜻이어서 ‘이 사람’하고 말하는 것과 같다.[春日男女遊山. 競逐爲戱, 相悅卽婚, 稱姊曰鬘奴衛. 伊此 ,薩郞人也, 猶言此人也]


其十八
白嶽山頭草似袍(백악산두초사포)
백악산 산머리에 도포처럼 덮여있는 풀밭

楊花渡口絮如毛(양화도구서여모)
양화 나루 어귀에는 털 같은 버들 솜이 흩날린다.

郞來踏靑珠勅馬(낭래답청주칙마)
들판에 나온 젊은이들 구슬재갈 물린 말 타고 즐기고

妾來戱水木蘭橈(첩래휘수목란요)
여인들은 나와 물놀이 하는 배에는 목란 노 달렸다.


其十九
壻屋當年事有無(서옥당년사유무)
옛날에는 살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 신부집에서 살게 하니

也知風俗古今殊(야지풍속고금수)
역시 풍속은 옛날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겠다.

洞房新闢蘼蕪徑(동방신벽미무경)
신방 새로 차리니 궁궁이 향기는 온 집에 넘치고

娶得姬人似玉奴(취득희인사옥노)
장가 든 예쁜 아가씨는 양귀비같이 아름답다.

※ 옛날 풍속으로 남녀의 혼인에 대한 의논이 정해지면, 신부집에서는 큰집 뒤에 작은집 지어 놓고 사위를 불러 묵도록 했다. 이를 서옥(壻屋)이라고 했다. 지금은 이런 풍습이 없어졌다. 그리고 사대부들이 첩을 얻으면 정실부인과 함께 살게 하지 않고 반드시 다른 방을 하나 마련해주어야 했다. [舊俗男女議婚已定, 女家作小屋於大屋後, 令婿就女宿, 曰婿屋, 今無是矣, 第士大夫納妾, 不與正室同居, 必另置一室]


其二十
異國班寮禮法疎(이국반료예법소)
이 나라의 관리들의 예법은 어두워

分曹雙陸自公餘(분조쌍륙자공여)
편을 갈라 주사위놀이를 관청일 끝나고 하는데

倚兒好莫令人見(의아호막영인견)
시중을 드는 아이가 맘에 들면 아무도 보지 못하는 사이에

奪作專房惱殺渠(탈작전방뇌살거)
빼앗아 데리고 가서 차지한다고 하니
주인의 마음은 무척 괴로웠겠지

※ 풍속에 주사위놀이가 성행하고 있는데, 같은 관리들이 모여 잔치를 벌려 놀 때 자기들의 어린 첩을 불러 술잔을 돌리도록 한다. 그때 간혹 그 아이가 맘에 드는 사람이 빼앗아 가버려도 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俗盛雙陸之戱, 同官讌集, 出侍妾侑觴, 或奪取以去, 不以爲怪]
※ 이 단락은 작자가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잘못 들어서 읊었을 것이다. 남의 첩을 빼앗아 훔쳐서 달아난다는 것은 조선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其二十一
慕華館畔送郞行(모화관반송낭행)
모화관 옆에서 길 떠나는 신랑 전송하는데

西去中華不計程(서거중화불계정)
서쪽 중국 땅으로 가는 길은 얼마나 먼 지 모른다.

軟語丁寧須記取(연어정녕수기취)
부드러운 말로 신신당부하는 말 꼭 기억하라고 하지만

往來嶺下莫關情(왕래영하막관정)
왕래령 아리 정을 남겨 두지는 말게나!

※ 모화관은 성 서쪽 10리 쯤에 있는 곳인데 이 나라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전송하는 곳이라고 했다. 왕래령은 평양성에 속한 곳에 있다. 옛날 선비 한 사람이 기생과 오랜 동안 사귀다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자 집 사람이 남편 뒤를 쫓아 찾아와 그에게 돌아가기를 재촉했다. 그러기를 오고가기를 여러 번 하게 되어 그곳 고개 이름을 왕래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했다. [慕華館在城西十里許 爲國人送行之所, 往來嶺屬平壤, 昔一士子, 與靑樓狎久, 不懷歸, 其家人, 踪迹促之, 往而 復來者數 嶺以是名]



其二十二
皂帽靑袍總縉神(조모청포총진신)
검은 모자 쓰고 푸른 도포 입은 이들은 모두가 벼슬아치들이고

六曹三府屬儒臣(육조삼부속유신)
육조 삼부 관료들은 모두 유학자들이다.

就中亦有多才者(취중역유다재자)
그 중에는 역시 재능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詩學唐人字晉人(시학당인자진인)
시는 당시를 배우고 글씨는 진나라 사람들을 본뜬다.

※ 이 나라에서는 시로써 관리를 뽑기 때문에 삼부와 육조에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아니면 끼어들 수가 없다. 시에 있어서는 당시를 높이 받들고 붓글씨도 매우 뛰어나다. [國以詩取士, 三府六曹, 非由科目出身者不得與, 詩宗三唐, 字學尤精]
※ 삼당(三唐) : 원래 당나라 시단은 초당, 성당, 중당, 만당 등의 4시기로 나누어 말한다. 그러나 청대의 왕사정(王士禎)은 중당의 전반부를 성당에, 후반부를 만당에 나누어 넣고 삼당으로 구분했다.


其二十三
官廚肴饌亦尋常(관주효찬역심상)
관중 주방의 안주와 요리는 먹을 만 했지만

只數鮮羹海味强(지수선갱해미강)
그래도 행선찌개에 바다 맛이 강한 것이 각별했다.

滿注玻瓈香色異(만주파려향색이)
유리잔에 가득부어 향기와 색깔 모두 특이한데

酥兒斟出似紅漿(수아짐출사홍장)
술이라며 따라 내놓는 것이 붉은 과일즙 같다.

※ 수아(酥兒)를 조선말로 읽으면 술이고 빛깔은 붉다.[譯酥兒酒紅色]


其二十四
烹來雀舌綠沈沈(팽래작설녹침침)
끓여 내오는 녹색이 자욱한 작설차

銅碗瓷甌任意斟(동완자구임의짐)
구리잔에 자기주발에 맘대로 따라준다.

別有玉杯供上客(별유옥배공상객)
따로 옥잔에 따른 것을 윗 손님에게 올리는데

淡香染齒是人參(담향염치시인삼)
맑은 향기 이빨 가득해지는 이것이 바로 인삼차다.

※토산의 인삼은 극히 좋은 품질로 그것을 차 대신 귀한 손님에게 접대한다. [土産人葠絶佳, 用以代茶餉貴客]


其二十五
木棉紅綠染衣裳(목면홍록염의상)
무명을 붉은색 푸른색으로 물들여 옷을 지어서

弱女錐兒一樣妝(약녀추아일양장)
어린 여자 남자 아이 똑 같이 입고 있다.

間有綾羅誇貴族(간유능라과귀족)
간혹 비단옷으로 귀족임을 뽐내는 이가 있는데

也知出處是蘇杭(야지출처시소항)
역시 그 생산지는 소주와 항주 임을 알겠다.

※남녀 아이들의 옷은 별로 다르지 않다. 높은 관리나 귀족들의 자제가 입는 비단은 중국에서 사온 것이다.[兒女服飾不少異, 縉紳始衣綾羅, 購之中國]


其二十六
方物年年貢內廷(방물연년공내정)
지방의 특산품을 해마다 우리 조정에 바치는데

紫貂華豹皂雕翎(자초화표조조령)
자주색 담비, 얼룩무늬 표범가죽, 검독수리 깃과 같은 물품이다.

遼東黃鷂奇無敵(요동황요기무적)
요동의 노란 새매는 기이하기 짝이 없다고는 하지만

畢竟輸他黑海靑(필경수타흑해청)
그래도 조선의 검은 해청에는 뒤진다네

※ 흑해청(黑海靑)은 해동청(海東靑)이라고 하는데 독수리의 일종이다. 해청의 깃으로는 갖옷을 지엇는데 매우 진귀한 물품으로 여겼다. 해청 중에는 가장 뛰어난 것이 바로 조선에서 나는 해동청이라고 했다.


其二十七
粉膩脂凝艶婦腮(분니지응염부시)
아름다운 부녀자들의 볼에는 분 바르고 연지 찍었고

東風亭院海棠開(동풍정원해당개)
봄바람 부는 정자 뜰에는 해당화 피었다.

輕衫洗馬穿花去(경상세마천화거)
가벼운 적삼입고 가냘픈 말을 타고 꽃가지 사이 뚫고 가는데

也向山村上塚來(야향산촌상총래)
성묘를 하고 산골 마을로 돌아오고 있는 모습이란다.

※濊濊 땅에는 말의 키가 세 자여서 과일나무 밑으로도 다닐 수 있다고 해서 과하마(果下馬)라고 한다. 지금은 조선 땅에 포함되었다. [地馬高三尺, 能於果樹下行, 謂果下馬, 今屬朝鮮境內]


其二十八
亦有人家聚族居(역유인가취족거)
역시 종족들이 모여 사는 촌락이 있고

城門初日照蓬廬(성문초일조봉려)
성문 위의 아침 해가 초가집을 비친다.

馬頭怪道喧如沸(마두괴도훤여비)
말머리 쪽이 무척 시끄러워 이상하다 했더니

一路腥風市海魚(일로성풍시해어)
길 앞에 시장은 비린내 가득한 바다생선 파는 곳이란다.


其二十九
八道中分俗異宜(팔도중분속이의)
조선 팔도는 중간게 나뉘어져 풍속이 서로 다른데

東連日本北魚皮(동련일본북어피)
동쪽은 일본과, 북쪽은 어피국과 접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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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幽南界全羅道(청유남계전라도)
맑고 그윽한 남쪽 경계에는 전라도가 있는데

繞屋梅花綠竹籬(요옥매화록죽리)
집둘에는 매화가 심어져 있고, 파란 대나무울타리 있다네.

※ 나라는 경기 황해 등 팔도로 나뉘어졌다. 그 중 남쪽의 전라도는 풍토가 뛰어나게 좋고, 특히 대나무와 매화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國中分京畿黃海等八道, 其南曰全羅道, 風土絶佳, 地産竹梅花尤多]
※ 어피(魚皮) : 작자는 ‘북쪽의 나라 이름이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지금의 길림성(吉林省) 동북의 혼동강(混同江) 유역에 살던 종족으로, 흑진(黑津), 혁근(赫斤), 혁철(赫哲)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었다. 물고기 가죽으로 옷과 신발을 만들어 써서 어피부(魚皮部)라고 불렀다.


其三十
閤門淸夜爛星毬(합문청야란성구)
쪽문마다 맑은 밤에 둥군 별 같은 초롱등불이 찬란하고

聯臂行歌雜沓遊(연비행가잡답유)
사람들은 팔짱끼고 노래하며 어지럽게 노닌다.

四月上弦傳舊俗(사월상현전구속)
사월 초파일에 옛 풍습 전하고 있는데

却疑鐙火是揚州(각의등화시양주)
중국 양주의 연등 행사가 아닌지 착각하겠다.

※ 사월초파일은 온 나라가 등불을 내걸고 북을 두드리며 노래하고 다니면서 즐긴다.[四月八日이 國中張鐙擊鼓, 行歌爲樂]
※ 양주(揚州)는 강소성에 있는 남경 동쪽 70키로의 양자강 북안의 도시다. 우임금이 중국을 9주의 한 주로 나눌 때 치소였다. 수상교통이 발달하여 상업이 성행하여 민간의 놀이가 매우 발전했다 사월초파일의 연등행사가 조선과 흡사해서 착각을 일으킬 정도라고 했다.


其三十一
垂髮妖童壓俊娃(수발요동압준애)
머리를 늘어뜨린 잘생긴 아이는 빼어난 계집아이보다 더 예쁘고

善才舞罷臉凝霞(선재무파검응하)
광대는 춤을 막 끝내어 얼굴엔 노을이 서린 듯하다.

傍人拍手齊聲和(방인박수제성화)
곁으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한목소리로 함께 합창하며

誇殺那來百爾囉(과쇄나래백이라)
“노래 불러”라고 크게 소리지른다.

※ 함께 노래 부르자고 하는 것을 ‘노래불러’라고 말한다. [叶唱歌曰, 那來百爾囉]



其三十二
玉峯詩遜石洲工(옥봉시손석주공)
옥봉의 시는 석주의 정교함만은 못하다고 하나

異國詞人此兩翁(이국사인차양옹)
외국의 사인으로는 이 두 노인이 최고다.

不道柳枝能賈禍(부도유지능가화)
뜻밖에도 버들가지 시를 지어 화를 당했으니

九原遺恨詠東風(구원유한영동풍)
저승에서도 원한을 봄바람에 실어 읊고 있으리!

※ 백옥봉과 권석주는 시를 잘 지었고, 시집이 세상에 나와 있다. 권석주의 시가 약간 낳았는데 일찍이 새 버드나무를 읊었다가 표현에 풍자적인 뜻이 담겨있다 하여 결국은 죽음을 당하여 나라사람들이 그를 슬퍼했다. [白玉峰權石洲, 工詩有集行世, 權作稍勝, 嘗賦新柳, 語涉譏諷, 徑論死, 國人哀之]
※ 옥봉(玉峯)은 조선조의 시인 백광훈(白光勳 : 1537-1528)의 호다. 13세에 이미 시를 잘 지어 이름이 알려졌으나 선조(宣祖) 13년 서기 1577년, 그의 나이 40세에 이르러서야 선릉참봉(宣陵參奉) 벼슬을 할 수 있었다. 이달(李達), 최경창(崔慶昌) 등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리고 석주(石洲)는 조선조 광해군 때 활약했던 권필(權韠 : 1569-1612)의 호다. 광해군의 비 유씨(柳氏)의 아우 유희분(柳希奮) 등 처족들의 방종한 생활을 궁류시로 비방하자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서 귀양을 가던 도중 죽었다.


其三十三
紅粉淸才妙一時(홍분청재묘일시)
화장한 얼굴의 재주있는 여인이 한 때 시를 잘지었으니

摩訶雜句寫烏絲(마가잡구사조사)
오랑캐 곡조 시들을 오사 종이에 썼다네.

朱甍碧瓦深如海(주맹벽와심여해)
붉은 용마루 푸른 기와 얹은 깊숙하기 바다 같은 집안에서도

吟遍婷婷公主詩(음편정정공주시)
정정공주의 시가 널리 옲어지고 있단다.

※ 손개사 검토가 일찍이 조선에 사신을 따라와서 손수《채풍집(採風集)》을 엮었는데, 조선의 선비와 여인들의 작품을 실은 것이었고, 그 속에 정정공주(婷婷公主)의 피서시(避署詩)가 실려있다. [孫愷似檢討, 曾陪使朝鮮, 手編採風集, 載東國士女歌詩, 有婷婷公主避署詩]
※ 마가(摩訶) : 불교용어로 ‘크다, 많다, 뛰어나다.’ 등의 뜻이 있다. 일찍이 중국에 마가두륵(摩訶兜勒)이라는 서쪽의 호악(胡樂)이 들어와 악부시로 유행했다. 여기서는 호악(胡樂), 곧 외국풍의 음악 또는 시를 뜻하는 말로 쓰고 있다.
※ 정정공주(婷婷公主) : 청나라 손치미(孫致彌)가 조선에 와서 시를 수집한 때는 현종(顯宗) 치세 동안이니 그 앞의 효중의 공주인 듯하다. 손개사(孫愷似)는 손치미의 자로써 호는 송평(松坪) 강희(康熙) 연간인 1622년에 진사에 합격하여 1669년에 조선 채시사(采詩使)로 뽑혀 조선에 와서 조선시인들의 시를 모아《채풍집(採風集)》을 편찬했고, 그 속에 정정공주의 피서시(避署詩)도 포함시켰다.


其三十四
遐方誰與話離愁(하방수여화이수)
먼 나라에 와서 누구에게 고항 떠난 시름 얘기할 건가?

畫地通名爾意優(획지통명이의우)
땅바닥 긁어 글씨 써서 인사하고 나니 그대 뜻 매우 고마운지고

欲挽滄溟傾筆低(욕만창명경필저)
바닷물 끌어다 붓 아래에 다 쏟으려 했지만

放歌題贈柳黃州(방가제증유황주)
시만 한 수 크게 읊어 유황주에게 주는 수밖에 없다.

※ 황해도에 속한 고을의 수령인 유선생이 내가 담벼락에 써놓은 시를 보고는 우정(郵亭)으로 찾아와 땅바닥에 글씨를 쓰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마침 우리 칙사가 말 위에 올라 떠나기를 재촉하는 바람에 아쉬움 속에 떠나왔다. [州屬黃海道, 州守柳君, 見余題壁句, 過訪郵亭, 畫地相起居, 會敕使登騎促行, 悵然離去]


其三十五
殊方官長亦何爲(수방관장역하위)
조선 관청의 우두머리들은 또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禮樂流風洵可追(예악류풍순가추)
예악이 잘 행해지고 있음은 알 수가 있지만

往往經過山郭外(왕왕경과산과외)
가끔 성 밖의 산기슭을 지나다 보면

野華紅覆去思碑(야화홍복거사비)
들꽃 붉은 꽃입에 송덕비가 덮여져 있다.
※ 거사비(去思碑) : 고을의 수령이 그 지방을 다스리면서 은덕을 베풀고 떠나간 뒤에 그 고장 사람들이 떠난 수령의 은덕을 되새기 위해 세운 추모비를 말한다. 송덕비(頌德碑)의 일종이다.


其三十六
海外文章下處探(해외문장하처탐)
해외에 글 잘 짓는 사람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笑看通引髮鬖鬖(소간통인발삼삼)
웃으면서 심부름하는 아이 바라보니 머리는 너풀너풀 쳐져 있다.

內中有解中朝字(내중유해중조자)
그 중에는 한자를 아는 아이가 있으니

醉索霜華倩筆談(취색상화천필담)
술 취하여 종이를 갖다놓고 필담을 하자고 한다.


其三十七
山童簇簇話喃喃(산동촉촉화남남)
시골 아이들 잔뜩 모여 시끄럽게 떠드는데

嘲哳鉤輈那得諳(조찰구주나득암)
조잘조잘 찍찍짹짹 어찌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向客蹲身緣底事(향객준신연저사)
손님을 향해 몸급히고 있는 것은 무슨 일 때문일까?

令監前乞樻枝三(영감전걸궤지삼)
영감님들 앞에 좋은 담배를 구걸하기 위해서라네!

※ 지방 백성들이 관청의 우두머리를 길에서 만나면 반드시 길가에 몸을 굽히고 서서 존경을 표시한다 관청의 우두머리를 영감이라 부른다. 조선 땅에서 나는 담배는 아주 좋은데 ‘궤지삼(樻枝三)’은 그 중에서도 쯕히 좋은 것이어서 보통사람들은 쉽게 손에 넣지 못한다. 나라 임금이 그걸 가지고 손님들을 대접하는데 역시 별로 많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방백성들이 다투어 그것을 구걸하고 있는 것이다. [部民遇官長於道, 必蹲距道旁以爲敬, 稱官長曰令監, 土産菸草絶佳 樻枝三尤佳者, 常人不恒得, 國王用以餉客, 亦不甚다, 故土人爭乞之]


其三十八
豐碑功德頌先皇(풍비공덕송선황)
큰 비석에 공덕을 새겨 선황(先皇)을 칭송했는데

異石琅琅爛有光(이석낭랑란유광)
기이한 돌은 번쩍번쩍 찬란한 빛을 발한다.

錦砌玉闌紅粉璧(금체옥란홍분벽)
아름다운 섬돌에 옥돌 난간 두르고 벽은 붉은 분을 발랐는데

到來羅拜一焚香(도래나배일분향)
사람들이 와서 줄지어 절하며 모두 향불을 피운다.

※ 돌은 밝기가 거울 같아서 세상에서는 투령비(透靈碑)라 부른다. 청태종이 일찍이 덕으로 조선을 달래어 그 임금과 신하들은 감화를 맏은 나머지 남한산 아래에 공덕을 새긴 비석을 세워 공덕비라고 하면서 정자를 만들어 비석을 보호하고 때에 따라 근무자가 문을 지킨다. [石明如鏡, 俗謂透靈碑, 太宗文皇帝, 嘗以 德綏朝鮮, 其君臣感化, 勒石漢山下, 顔曰功德碑, 作亭護之, 時勤啓閉焉]
※ 선황(先皇) : 청태종(淸太宗) 황태극(皇太極)을 말한다. 조선이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무시하자 청태종은 1636년(인조 10년)에 용골대(龍骨大)등을 파견해서 조선을 침략하여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청태종은 조선을 압박하여 1639년 공덕비를 세우도록 했는데 그것이 삼전도비(三田渡碑)이다.


其三十九
層臺百尺勢摩空(층대백척세마공)
층층이 쌓은 백척 누대는 하늘에 닿을 것 같은 형세라

處處山川在眼中(처처산천재안중)
산천 모든 곳이 한 눈에 들어온다.

六合一家無避忌(육합일가무피기)
온 세상이 한집안처럼 꺼리는 것이 없고

碧桃花外認王宮(병도화외인왕궁)
벽도나무 꽃 저쪽으로 임금의 궁전도 보이네.

※ 나무를 엮어 여러 길의 누대를 만들어 놓고 중국 사신들을 불러 맘대로 구경하도록 함으로써 감추는 것이 없음을 표시하였다. [架木爲臺 高數仞, 邀勅使縱觀, 以示無隱]


其四十
綵衣輕足撲撞竿(채의경족박당간)
채색 옷을 입은 이가 가벼운 발로 장대 잡고 노는데

呈盡都盧伎百般(정진도로기백반)
장대를 오르내리면서 온갖 재주를 다 부린다.

門館先生何所事(문관선생하소사)
문관선생인 나는 무엇을 했는가?

也騎官馬向前看(야기관마향전간)
역시 관아의 말을 타고 나아가 구경했었지.

※ 따르는 관리들이 나를 문관선생이라고 불렀다.[從官稱予曰 門館先生]


《조선죽지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