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안행(歲晏行)

하경명(何景明)

舊歲已晏新歲逼)구세이안신세핍)
해가 이미 다 가고 새해가 닥쳤는데

山城雪飛北風烈(산성설비북풍열)
산성에 눈 날리고 북풍은 맹렬하다.

徭夫河邊行且哭(요부하변행차곡)
노역이 하수변을 가면서 통곡하는데

沙寒水冰凍傷骨(사한수빙동상골)
모래 차고 물 얼어서 동상에 뼈를 상한다.

長官州號吏馳突(장관주호이치돌)
장관은 소리치고 아전은 들이닥치는데

府帖連催築河卒(부첩연최축하졸)
부첩은 날아와 하수의 제방을 쌓는 사졸을 들볶는다.

一年徵求不少蠲(일년정구불소견)
일년의 세금을 조금도 갚지 못하니

貧家賣男富賣田(빈가매남부매전)
가난한 집은 남아를 팔고 부자집은 밭을 판다.

白金縱有非地產(백금종유비산지)
백금이 있다한들 땅에서 나오지 않으니

一兩已值千銅錢(일냥이치천동전)
한 량이 이미 동전 천전에 해당한다.

往時人家有儲粟(왕시인가유저속)
지난 날엔 인가에 저장된 양식이 있었지만

今歲人家飯不足(금세인가반부족)
올해는 인가에 밥도 부족하다.

饑鶴翻飛不畏人(기학번비불외인)
굶주린 학이 날며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고

老鴉鳴噪日近屋(노아명조일근옥)
늙은 까마귀는 울며 매일 지붕 근처에 맴돈다.

生男長成聚比鄰(생남장성취비린)
아들 낳아 장성하면 이웃에 모이고

生女落地思嫁人(생녀낙지사가인)
딸을 낳아 땅에 떨구면 시집갈 사람을 생각하네.

官家私家各有務(관가사가각유무)
관가나 사가나 모두 각각의 일이 있는데

百歲豈止療一身(백세기지요일신)
백년 세월에 어찌 일신만 배를 채우겠는가?

近聞狐兔亦徵及(근문호토역정급)
근래 듣자니 여우와 토끼도 또한 공납하기 위해

列網持矰編山城(열망지증편산성)
그물 치고 주살 들고 온 산성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野人知田不知獵(야인지전부지렵)
시골사람들 농사는 알아도 사냥은 모르니

蓬矢桑弓射不得(봉시상궁사부득)
쑥대 화살 뽕나무 활을 쏠 수도 없다.

嗟呼今昔豈弄情(차호금석기농정)
아, 지금과 옛날이 어찌하여 정이 다르겠는가!

昔時新年歌滿城(석시신년가만성)
지난날엔 신년에 노래가 성에 가득했었지

明朝亦是新年到(명조역시진년도)
내일 아침이면 신년이 되는데

北舍東鄰聞哭聲(북사동린문곡성)
북쪽 집 서쪽 이웃엔 통곡소리만 들려온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