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平行(장평행)

왕세정(王世貞)

본 작품은 작자가 전국시대 최대의 격전지인 장평(長平)을 지나가다 당시에 진나라에 항복한 조나라의 40만 군사들을 갱살한 백기의 만행을 비난한 시이다. 장평은 지금의 산서성 고평현(高平縣) 서북이다. 기원전 260년 진나라 장군 백기(白起)가 이곳에서 20만의 진나라 군사들을 이끌고 조나라의 장군 조괄(趙括)이 이끌던 45만의 조나라의 군사를 대파했다. 백기는 항복한 조나라의 군사 40여 만 명을 구덩이 속에 파묻어 죽였다. 춘추전국시대 전 기간을 걸쳐 가장 규모가 큰 전쟁이었다.


世間怪事那有此(세간괴사나유차)
이 세상에 이 보다 더 괴이한 일이 어디 또 있을까?

四十萬人同日死(사십만인동일사)
사십만의 사람이 같은 한 날에 죽었다니!

白骨高於太行雪(백골고어태행설)
백골은 태항산 꼭대기의 눈 보다 더 높게 쌓이고

血飛迸作汾流紫(혈비병작분류자)
솟구쳐 흐르는 피는 분수를 자색으로 물들였다.

銳頭豎子何足雲(예두수자하족운)
백기 같은 어린 아이야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汝曹自死平原君(여조자사평원군)
그대들이 죽은 것은 탐욕스러운 평원군 때문일세!

烏鴉飽宿鬼車哭(오아포숙귀차곡)
포식한 까마귀는 깊이 잠들고 귀거새는 곡을 했는데

至今此地多愁雲(지금차지다수운)
지금도 이 땅에는 시름 깊은 구름이 자욱 하다네!

耕農往往誇遺跡(경농왕왕과유적)
밭 갈던 농부가 왕왕 유물을 캐내는데

戰鏃千年土花碧(전촉천년토화벽)
천년 전 흙 속의 화살촉은 파란 꽃으로 피었다.

即今方朔澆豈散(즉금방삭요기산)
동방삭에게 술을 따르게 한들 위로가 되겠으며

總有巫咸招不得(총유무함초부득)
비록 무함이 온다한들 혼령을 부르지 못하리라.

君不見(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新安一夜秦人愁(신안일야진수)
신안의 하룻밤 사이에 수심에 쌓인 진인들을!

二十萬鬼聲啾啾(이십만귀성추추)
이십만 명의 귀신들 우는 소리 요란하네

郭開賣趙趙高出(곽개매조조고출)
곽개는 조나라를 팔아먹었고 조나라는 조고를 보냈으니

秦璽忽送東諸侯(진쇄홀송동제후)
진나라의 옥쇄는 갑자기 동쪽에서 온 제후의 차지가 되었네.

명세종(明世宗) 주후총(朱厚熜) 연간인 가정(嘉靖) 5년인 서기 1526년에 태어나서 명신종(明神宗) 주익균(朱翊鈞) 연간인 만력(萬曆) 18년인 1590년에 죽은 명말 관리출신의 문인이다. 자는 원미(元美), 호는 봉주(鳳州) 혹은 엄주산인(弇州山人)으로 강소성 태창(太倉) 출신이다. 가정칠재자(嘉靖七才子) 즉 후칠자(後七子)의 한 사람이며 학식이 가장 높았다. 1547년 진사에 합격하여 형부(刑部)의 관리가 되었으나, 강직한 성격 때문에 당시의 재상 엄숭(嚴嵩)의 뜻을 거역하였다. 엄숭이 구실을 만들어 고도어사(古都御史)인 그의 아버지를 사형시키자, 벼슬을 그만두고 아버지의 무고함을 주장하여 8년간이나 노력한 끝에 명예를 회복시켰다. 그 뒤 다시 지방관에 복귀하였고, 남경의 형부상서(刑部尙書)를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후칠자의 맹주격인 이반룡(李攀龍)과 함께 이왕(李王)이라 불려 명대 후기 고문사파(古文辭派)의 영수가 되어 이반룡이 죽은 뒤에는 그 지위를 독점하였다. 격조를 소중히 여기는 의고주의(擬古主義)를 주장하였으나, 이반룡이 진한(秦漢)의 글과 성당(盛唐) 이전의 시만을 그대로 모방한 데 비하여 왕세정은 상당히 유연한 태도를 취하였다. 만년에는 당나라의 백거이(白居易)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송(宋)나라의 소동파(蘇東坡) 등의작품에도 심취하였다. 유집에는 《엄주산인사부고(弇州山人四部考)》 174권과 《속고(續稿)》 207권이 있고 중국 4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로 알려진 《금병매(金甁梅)》가 그의 작품이라는 설이 있고, 희곡으로는 《명봉기(鳴鳳記)》가 유명하다.

《끝》